퇴사 D+68
오늘 2023년의 마지막 달 수익금이 들어왔다. 2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
12월 목표 매출이었던 300만원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터무니없었다), 나에게는 나름 의미가 깊다.
원룸 꾸미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개발자로서는 나름 성공한 커리어였을지 몰라도, 내 인생만큼은 실패 같다고 느꼈던 지난 8년.
내가 좋아하는 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하는 마음에 당근마켓에 글을 올렸다
"원룸 무료로 꾸며 드립니다"
그리고 며칠 뒤 달린 답변
"어디로 연락드리면 될까요?"
나의 첫 의뢰인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신 20대 여성분이셨다
좋은 기회로 취업이 되어 수도권으로 올라오셨고, 이전까진 지방에서 가족들과 지내셨다고 했다.
그렇게 의뢰서와 함께 받게 된 집 사진.
사진 속 보이는 침대와 접이식 교자상 하나.
물론 살림을 가볍게 해 놓고 사시는 분이셨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혼자 살게 된 것이 처음이었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차 나의 글을 보게 되셨다고 했다
'이전까진 가족들과 오손도손 거실에 모여 식사를 하고 하루를 보내셨을 텐데..'
왜인지 방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교자상이 쓸쓸하게 느껴지면서 잘 꾸며드려야겠다는 엄청난 책임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며칠 밤을 새워 열심히 작업했고, 10장 가까운 분량의 PDF 파일을 만들어 전달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온 연락.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무료로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커피라도..!"
그렇게 받은 커피 쿠폰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벌게 된 첫 수익이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23년 한 해동안 정말 다양한 사연의 의뢰인 분들을 만났다.
키우던 강아지가 하늘나라로 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시게 됐다는 남성분,
몸과 마음이 아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계획 중이시라는 여성분,
아직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아 살고 있던 원룸을 신혼집으로 꾸리신다는 20대 부부.
의뢰인 분들이 공통적으로 원하시는 건 하나였다.
새로 시작할 공간을 누군가가 함께 고민해줬으면 하는 것.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비록 전에 다니던 직장에 비하면 수익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좋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되길, 새로 꾸며진 공간이 그분들을 지탱해 줄 기둥이 되길,
그리고 24년에는 더 많은 분들께 닿을 수 있길 작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