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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Mar 12. 2024

본질의 확실성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_서평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768쪽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다.


사실 세세한 내용이 내 마음을 끌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집중했다.




소년이 진정 사랑한 소녀불확실하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상상한 도시의 일부다. 편지는 어느 순간 끊겼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주소에 찾아가도 이미 그곳에 살지 않는다.


소년이 진정 사랑한 소녀의 도시불확실하다. 지도에도 없고,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이 불분명한 안개다. 현실과 비현실, 산 자와 죽은 자가 혼재되어 있는 곳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소년이 진정 사랑한 소녀의 도시의 그림자불확실하다. 소년과 분리된 그의 그림자는 말한다. 난 당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난 당신과 함께일 때 존재할 힘이 있다고. 그러나 우리는 곧 알게 된다. 도시에 남은 소년 대신 그림자가 소년의 기억을 안고 평생을 살아갔음을 말이다. 


따라서, 소년이 진정 사랑한 소녀의 도시의 그림자의 영혼불확실하다. 소년의 그림자가 소녀를 사랑했던 소년의 감정을 안고 평생을 살아갔다면, 그 본질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소년은 불확실하다. 더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본질불확실하다. 소년은 꿈을 읽는 일을 도시에 들어온 새로운 남자아이에게 맡긴다. 그리고는 단단한지 말랑한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벽을 넘어 도시 밖으로 건너온다. 그렇다면 같은 기억과 영혼을 갖고 마주 선 소년과 소년의 그림자는 다시 합쳐질 수 있을까? 대답은 no일 것이다.




생각만큼 재밌지 않은 아쉬움 남는 소설이라는 평이 많다.


그러나 분명 다시 보고 싶은 책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첫째, 완벽한 서사 구조를 요약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중간중간 조력자가 등장하며 서사가 전개되고, 반전을 거듭하는 뼈대를 배우고 싶다.


둘째,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력은 역시 무시 못한다. 내가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줄거리라기보다는 다른 데 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몰입하게 되는 표현력인데, 그건 아마 사람들이 어떤 것을 사고할 때의 어감이나 흐름과 닮아있기 때문일 거다. 


셋째, 은유를 적당하게 잘 담았다. 최근 퇴사를 겪으며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집요하게 되묻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금 인생은 간단명료하게 정리될 수 없고, 한 사람의 본질도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없다고 깨닫는다. 이 책을 보면서도 그러했다. 본질은 불확실하다는 은유로 장편 소설을 끌고 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평점: 6/10 (희희 개인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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