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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쌓아 놓던 버릇 어디 안 가네.

오늘 생각 10

by 은진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날 교육잡지 구독신청을 했다. 입시라니, 멀고도 먼 이야기 같았지만 교육잡지에는 고3 한정 정보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낯선 용어에도 익숙해지고 전반적인 흐름도 익힐 겸 부담 없이 받아보고자 했다.




6학년이 되면 예비중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너 이제 초등학생 아니야, 정신 차려!'가 '예비중' 세 글자 안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아 매우 부담스럽다.


아이는 아직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영어는 소위 말하는 엄마표로 진행하다가 에세이만큼은 전문가의 손에 맡기자 싶어 훌륭한 줌 수업을 찾아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가을에 시작한 화상영어도 아이가 좋아하는 시간이라 끊지 못하고 횟수를 줄여 아직 진행하고 있다.

나머지는 혼공 중이다.


중학생이 되면 무조건 학원에 보내야 할 것 같았지만 아직은 필요를 느끼지 못해 지금의 방법을 당분간 유지할 예정이다. (여차하면 넣을 학원도 종종 알아보면서)

학원에 보내든 보내지 않든, 엄마가 챙겨야 할 부분은 분명히, 언제나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상의하고 조정하는 것은 일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수.

책을 읽고, 검색을 하고, 때로는 강연을 듣고 잡지를 구독한다.(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잡지구독은 대실패로 돌아갔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급하지 않으니 우선순위가 계속 뒤로 밀렸다. 읽어야 하는 책에 밀려 읽고 싶어 구입한 책에는 오히려 먼지가 쌓여가듯, 얇디얇은 이 주간지들도 방치되고 말았다.

드라마는 보면서, 입시잡지는 방치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래도 드라마는 봐야지...)




쌓여 있는 잡지를 보자 어린 시절이 소환된다. 구독신청을 하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카세트 플레이어를 주던 학습지부터, 지금도 업계탑인 방문 수학 학습지까지 이상하게도 정기적으로 오는 것들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새 문제집을 사면 책상에 앉아 그 자리에서 모조리 풀어버리는 것이 재밌다고 느꼈던 때도 있었건만, 그 작디작은 학습지가 뭐라고 그리도 풀기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하나, 둘 밀리면 압박감에 오히려 더 하기 싫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쌓여 있던 학습지를 모조리 가방에 넣어 학교에 들고 가기도 했다. 이름 붙이자면... 학습지 품앗이? 엄마가 아셨다면 기절초풍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한다면 난 아마 엄청난 충격과 배신감에 치를 떨겠지.(슬쩍 물어보니 요즘도 그 비슷한 일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세월은 흘러도 꼼수는 변하지 않는구나.)




나름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겐지 아직도 한 번씩 쌓여가던 학습지가 생각난다.

쌓여 있는 교육잡지를 보며, '나는 주간지랑 안 맞아 안 맞아.' 했다. 잡지가 흥 하고 코웃음을 며 비웃을 일이다.

상처뿐인 1년간의 정기구독이 끝났다.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양심 없는 해방감과 함께 이제 중1이 무슨 입시잡지냐며 재구독 신청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여름의 일이니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결정이었다.


계속해서 재구독 알림이 오던 어느 날, 나는 또 눈이 번쩍 뜨이고야 만다. 구독 연장을 하면 약간의 할인혜택이 주어지는데, 할인혜택 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그것은 무려 내가 무척 애정하는 모 출판사의 국어교과서 읽기 관련 도서였다. 무려 세트다.


굉장한 이득 같은 착각이 든다. 아직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건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차근차근 읽어두면 엄청난 내공이 쌓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다. 구독연장 쪽으로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사은품으로 주어지는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던 그 순간, 나는 이미 내 결정을 눈치챘던 것 같다. 럼 그렇지.




그리하여 이번 주, 다시 첫 번째 잡지가 도착했다.

남편의 눈치를 살핀다. 매번 포장을 벗겨 건네주던 그는 내가 읽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게 분명하다. 아들의 눈치도 살핀다. 다행이다. 얘도 모르는 것 같다.

'너 이번 달 **잡지 읽었어?'라며 단속하길 수십 번이었으니, 절대로 들켜서는 아니 된다.


같은 시기에 같은 잡지를 구독했다가 비슷하게 실패한 지인과, 같은 날 또 같은 잡지 구독 신청을 했다. 이번엔 꼭 잘 읽어 보자고 다짐하며 매주 완독 인증도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굉장히 큰 일 도모하는 줄)


오늘의 오늘 생각은 오늘의 다짐. (응?)

잡지는 도착 당일 읽도록 합니다!



학습지 품앗이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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