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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뜨기와 안뜨기 사이의 깨달음

오늘 생각 12

by 은진

이제 정말 겨울이다.

포근한 느낌의 타이즈 없이는 스커트를 입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진정 싫어하는 그것이 돌아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칠부 소매 코트에 팔을 다 내놓고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종로 한복판을 걸어 다니던 나는 이제 없다. 지금의 나는 추위에 매우 약해져, 그 장면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난다.


"너 안 춥니?" 엄마가 하셨던 말씀 메아리친다.




예쁜 메리제인 구두가 신고 싶어 며칠을 검색한 끝에 드디어 발이 편하기로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을 하나 골랐다.

결제만 남겨둔 시점에 한 광고가 눈에 훅 들어온다.


어그스타일 운동화라니! 폭신폭신 따뜻하게 생겼는데 예쁘기까지 하면 이건 못 이기는 거다. 그래... 겨울에 구두가 웬 말이냐 싶어 메리제인 대신 털신을 결제했다.


추위를 견딜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거추장스러운 건 딱 질색이지만 올해는 찬바람이 불자마자 바라클라바와 목도리 생각이 났다.




독학으로 뜨개질을 배웠다. 처음엔 코바늘로 가방을 뜨기 시작하다가 현관에 가방이 주렁주렁 너무 많이 열리자 종목을 바꿔본다.


대바늘 뜨기 도전!

역시나 대바늘 뜨기는 쉽게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어릴 적 엄마가 떠주셨던 꽈배기무늬 분홍 원피스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과 품이 녹아있던 것이었는지 절로 알게 되었다.


처음 대바늘 뜨기를 연습하던 두 해 전, 제일 먼저 비교적 만만해 보이던 본 스타일 목도리를 선택했다.


뜨고, 또 뜨고, 풀고, 또 풀고.

엉성한 것은 내가 쓰기로 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것은 선물도 했다. 남편에게도 하나(떠달라고 하더니 한 번도 안 쓰더라!), 아이도 하나.

세상에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물론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뜨개질을 영상만 보고 따라 하려니 화면을 뚫고 들어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가장 쉬운 기법인데도 왜 자꾸 틀리는 것인지, 한 번 틀리면 되돌리는 건 또 왜 그리 복잡한지, 틀린 부분만 풀어내고 다시 뜨는 코바늘 뜨기와는 차원이 랐다.


가끔 피아노를 치다가 건반을 냅다 패는 아들에게, 취미생활 하면서 스트레스받을 거면 하지 말라고 내뱉었던 내 목소리가 '반사'를 타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올여름의 일이다. 독학으로 배운 초보 주제에 그물 니트 스웨터 뜨기에 도전하기로 한다.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 재료를 주문하려다 용기가 없어 망설이길 여러 차례, 워낙 영상이 친절한 곳이라 차근차근 따라 하면 될 것도 같았다.


이 정도면 꽤 순조롭구먼 하던 순간, 정말 순간이었다.

잘 못 자른 실.

주르륵 풀려버린 그것을 수습할 능력이 나에겐 없었다. 며칠을 뜨고 또 떴는데... 하필 소매 연결 부위에서 일을 치고 말았다. 수습해 보려고 하면 할수록 스웨터는 점점 멀어져 갔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꿈이냐...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었으므로

예쁘게 접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다. 훗날 실력이 쌓이면 법이 생기려나 싶어 버리거나 모두 풀어버리지는 않았다.

대신, 새 실을 주문했다.

(니트를 두 개 사서 입는 게 더 싸게 먹힐 일이다.)

한 번 실패해 보았으니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섣불리 당기거나 자르지 않는다.

그래도 그 며칠이, 실패가 헛되지 않았던 것인지 처음보다 훨씬 진도도 잘 나가고, 조금 틀린 부분은 어렵지 않게 바로바로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목과 어깨와 손목은 소중하므로 조금씩 천천히 시간제한을 두고 떠내려갔다.


차르르 흐르는 연보랏빛 여름 니트가 완성됐을 때에는 이미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직 이 옷을 입어 보지는 못했다.



다시 오늘, 나는 목도리를 뜨고 있다.


후기를 꼼꼼히 읽고, 어떤 이가 '실물 깡패'라고 묘사했던 컬러를 골랐다. 어두운 붉은색.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차분한 느낌의 빨강이라 어디에나 어울리겠구나 싶어 더 신이 난다.


드라마를 틀어 놓고 신바람 나게 뜨다가, 처음 목도리를 뜰 때 자꾸만 틀려 풀어내기를 반복했던 일이 올랐다.


아, 그동안 많이 늘었구나.

이제는 틀리지도 않고 무늬도 제법 예쁘게 나오잖아.


올여름 니트를 뜨겠다고 지지고 볶고 했던 시간을 보내고 하니, 목도리쯤이야 이렇게 쉬울 수가 없다.


뭐든지 꾸준히 하면 늘긴 는다,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정확도와 속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 보자며, 내가 좋아서 시작하고 몰두하다 보니 누군가의 눈에는 '뜨개질 좀 하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기쁜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보이는 것만큼의 실력은 아니라는 생각에 츠러든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보니, 칭찬을 받아도 나는 늘 초보였다.




몸이 바뀐 두 남녀 주인공이 다시 제자리를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보고 들으며, 안안겉겉, 단조로움의 극치인 안뜨기와 겉뜨기를 번갈아 하던 어느 순간이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름 발전도 하고 있는데, 칭찬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불뚝한 마음이 둥둥 떠오른다.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꼭 넘어야만 하는 지점,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 보는일, 실패로부터 배우는 일, 포기하지 않고 끝맺음을 짓는 일.

무엇을 하더라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것들을,

지난 여름 나는 (자각하지 못한 채로) 번 지나왔나 보다.


대수롭지 않은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배워지는' 것은 언제나 있다.





태어나 뒤집고 되집고 앉고 서고 걸으며 한 사람으로서 살아온 모든 순간이 이런 작디작은 고개의 연속이었으리라.


평범한 일상에서 얻는 자잘한 성취와 깨음의 순간들이 앞으로도 자주 찾아와 주기를, 떡과 글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저 아이에게도 자주 찾아오기를 망한다.


네, 저 뜨개질 좀 하는 여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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