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 23
무서운 꿈을 꾸었다.
건강에 관한 꿈이었는데, 현실이 일부 반영 되어 매우 디테일했다. 눈을 번쩍 뜨고는 '꿈이야? 아...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비몽사몽간에 중얼거렸다. 어제 잠들기 전에 뭘 봤더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꿈에서마저 건강 걱정이라니, 남은 건강검진을 어서 해치워야겠다.
나에겐 건강 염려증이라는 나쁜 친구가 있다.
원래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잖은가? 지금은 조금만 방심해도 살이 오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는 것에 비해 몸무게 변동이 거의 없는 편이었고 어릴 땐 그렇게 떡볶이를 먹어대고도 꽤 마른 몸으로 이리팔랑 저리팔랑 했더랬다. 먹기는 잘 먹으면서 허구한 날 울렁거린다고 어지럽다고 하니 하루는 지켜보던 엄마 친구분께서 '은진이는 몸을 유리로 만들었니 두부로 만들었니' 하셨던 기억이 난다.
조금만 아파도 동네에 있는 약국과 의원을 알아서 잘 다녀왔고, 그러고 나면 또 금세 쌩쌩해졌다.
자잘하게 병원을 자주 들락이며 '잔병치레와 장수의 상관관계가' 이렇게 탄생했구나 했다. 큰 병이 생겨도 일찍 발견할 테니 말이다.
아, 건강염려증이 이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나의 모든 변화는 거의 출산 후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산 후 나는 체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기초체온이 36.5도에도 못 미치던 것이 지금은 37도가 넘는다. 처음 체온계에 찍힌 37.6도를 본 날, 나는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분명히 뭔가 걸린 걸 텐데 아기에게 옮길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영유아검진차 들른 소아과에서 간호사님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저는 기초체온이 37.4도예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때부터 체온을 체크해 보았더니. 평소엔 37도 언저리, 배란기에는 놀랍게도 37.8도까지 치솟는다. 이 이야기를 병원에서 했더니 선생님이 갸웃하시며 자가면역질환 검사를 권하셨다. 결과는 정상이었다. 코로나 때 얼마나 곤란했는지 모른다. 구분이 잘 되지 않아 일반 코감기에도 선별진료소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이 또한 자발적 액션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다.
같은 37.8도라도 열이 날 때는 추위를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약간의 더위를 느낀다. 달력을 살피면 어김없이 배란기다.
체온이 37도 아래로 내려가면 또 오들오들 떤다.
정기검진 중 가슴에 생긴 혹을 조직검사 한 일이 있다. 아마도 건강염려증이 딱 달라붙은 순간이 이때였을 거다.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이 걱정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아이가 어린데요..." 하자 의사 선생님께서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들은 어쩜 하나같이 아이 걱정만 해요. 남편 걱정하는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건강체질과는 거리가 멀었던지라 45세를 기점으로 아픈 곳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각한 질환은 없었지만 컨디션 좋은 날은 손에 꼽았다. 밤에 잠 못 이루는 일이 많아지니 모자란 잠을 낮에 보충한다고 해도 늘 기운이 없었다. 참 희한하게도 40대부터 어지럼증과 불면증을 겪고 계신 엄마를 그대로 닮아가는 것 같았다. (사실 밤의 나는 노느라 못 자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가끔 길을 걷다 잘 다니시는 할머니들을 뵈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저분들은 건강하시니 이렇게 다니시는 거겠지 싶어 그렇다. 출산 후 나의 목표는 아이가 독립하고 가정을 꾸릴 때까지 건강하게 곁을 지키는 것이었으므로 이미 그것을 모두 이뤄낸 것이 분명한 연세의 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이런 것을 웃프다고 하던가.
각종 검사를 할 때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결과를 볼 때면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음 검사 때도 감사의 인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남편은 나의 건강염려증의 원인을 메디컬드라마로 꼽았다. 특히 미드 '하우스'. 그러고 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무언가가 심각하게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스토리를 보고 또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요즘은 이런 드라마를 보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오히려 건강할 때는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곤 했는데, 1년에 한 번쯤은 생각나면 들러 혈액검사 정도는 해보곤 했는데,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자 병원에 가는 것이 점점 더 두려워졌다. 건강검진을 하기 전 식이요법과 운동에 돌입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런 것 아닐까? 그렇게 받은 성적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H'를 보는 일은 피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알 것 같다.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때 가서 검사를 해야 할 것 만 같아 자꾸만 미루게 된다.
건강하다는 것을 일찍 확인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만약 건강하지 않다면 오히려 더 빨리 알아야 할 텐데,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의 개꿈은 아마 이런 심리를 반영한 것이리라.
12월 첫 주가 벌써 끝나간다. 미뤄두었던 항목들을 클리어해야 할 때다. 월요일엔 제일 먼저 예약 전화부터 돌려야겠다.
나는 건강할 것이 분명하므로 쫄지 말고 당당히. (그래도 예약 날짜는 되도록 멀리, 그사이 걷기라도 좀 할 수 있게.)
건강검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