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각 22
"겨울양반, 내가 그렇게 경... 부탁까지 했는데 진짜 이러기요?"
"제가 뭘요? 저는 그냥 때 돼서 왔을 뿐인데요. 그럼 뭐 저는 제 할 일 안 하고 놀아요? 오지 마요?"
"이 양반이 왜 말을 이렇게 하실까? 누가 일 하지 말래요? 적당히 하라고요. 적당히! 그렇게 열일하면 누가 상이라도 줘요? 왜 튀고 난리야 난리가."
"뭐가 어쨌다고 오자마자 이래요? 진짜 기가 막히네. 말을 해 봐요. 도대체 뭐가 문젠지!"
"지금 몰라서 물어요? 눈 내리는 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다짜고짜 첫눈부터 대설주의보오오오? 그것도 그럴 수 있다 이거야. 그런데, 천두우웅? 지금 당신 나랑 해보자는 거요? 천둥을 그렇게 하늘 갈라지게 치면서 눈을 퍼부어대면 어쩌자는 거예요? 그것도 퇴근시간에! 나는 비라도 오는 줄 알았지,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잖아요! 세상에 양심도 없이..."
"내가 일부러 그랬어요? 일 하다 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자주 그러는 것도 아니고 몇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구만. 그걸 또 듣고 까탈이요?"
"이요? 이요오?"
"내가 하두 기가 막혀서 AI양반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네, 내가 잘 못 들은 건지 귀를 의심해서 눈천둥이 말이 되나 하고 말이오. 댁 말마따나 매우 드문 현상이 맞답디다. 내가 올 겨울은 좀 무난히 가자고 말한 당일에 이런 일이 우연일까?
과연 이게 우연이냐고! 눈천둥은 자연재해로 분류된다는데, 응? 지금 조금만 검색해도 살면서 눈 오는데 천둥 치는 건 처음이라고 들썩이고들 있구먼, 왜 일을 어렵게 만드냐는 말이에요.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눈 오면 당신처럼 싫어하는 사람만 있는 줄 알어?
애들은 좋아서 폴짝폴짝 뛰어. 그런 사진 하나 쯤은 있을 거 아냐? 그 집도 아들 하나 있더구먼. 어릴 때 눈바닥에서 행복해하던 거는 뭐 거저 얻은 추억인 줄 아나 보지?"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이렇게 눈을 많이 쏟아부으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고. 당장 아침에 유치원 가고, 학교 가는데 미끄러운 건 어쩔 거며, 천둥소리도 어지간해야지 어른도 놀라 자빠지는데 애들은 더 놀라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뭐든지 적당히 하자는 거지. 과하다고 지금. 게다가 첫눈인데. 연인들 응? 첫눈 내린다고 만나 가지고 미끄러워서 넘어지고 구르고, 길에 차 버리고, 이런 건 좀 아니잖아. 낭만이 읎어. 이 양반아... 최소한 첫눈은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살다 살다 내가 1년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일 좀 해보겠다는데 열심히 하고 욕먹으니 기분이 참 좋지 않소. 나는 내 할 일을 한 것뿐이지만서도 그래, 첫눈에 과했던 건 인정하리다. 대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고 딴지 걸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니 그렇게 아슈. 가뜩이나 지구온난화다 뭐다 해서 일하기도 힘든데 보태지 말란 말이오. 저기 윗분도 아무 말씀 안 하시는데 말이야."
"그래요 그럼. 인정한다니 나도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데, 나도 그 윗분이라면 친분이 좀 있거든? 이래 봬도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야 내가! 괜한 핀잔 듣기 전에 서로서로 조심 좀 합시다. 애기들이 얼마나 놀랐겠어 원... 사흘을 앓다가 출근한 우리 남편은 또 퇴근길이 얼마나 힘들겠냐고. 거 웬만하면 밝을 때, 밝을 때 예쁘게, 알잖아요. 그... 낭만적으로다가, 그 정도만 하고 빠져주면 좀 좋아요? 부탁 좀 합시다.
내가 십 년도 더 전에 눈 밭에 붕 떠서 떨어진 뒤로 아직도 가슴에서 찌그럭 찌그럭 소리가 나. 진짜 부탁 좀 합니다. 잘 알아들은 걸로 알 테니!"
"..."
보기엔 예쁘긴 예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