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이런 청혼을 하는 사람은 어떤 결혼 반지를 선물했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모름지기 청혼을 하는 사람은 다이아 반지를 사줄 능력은 되야할 것 같은데, 이 아저씨는 왠지 실반지 묶어주면서 청혼할 것 같애. 그런데 다음 연들을 보면 이 아저씨는 다이아는 못줘도, 청혼할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 남들이 청혼하면서 다이아 반지로 재력을 과시할 때 이 아저씨도 은근히 엄청난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아저씨는 타오르는 장작처럼이 아니라 오래된 거리처럼 청혼의 대상을 우직하고 담백하고 무던하게 지켜온 것 같다. 동시에 별들이 웅성거리는 듯한 떨림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2연. 이 아저씨가 청혼의 대상을 지키는 방식은 뭘까. 무언가를 지킬 때는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수도 있고 슬픔으로부터 지켜줄 수도 있고 그저 항상 옆을 지켜줄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자아가 변하지 않도록 지켜줄 수도 있다. 아저씨는 '여름'에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 같은 '비'를 준다고 말한다. 여름처럼 치열한 삶이 찾아와 자아가 과열돼도 이 아저씨는 묵묵하게 동네 공원 산책시켜주면서 마음을 지켜주고 곁을 지켜줄 것이다. 이 아저씨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를 살며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청혼의 대상도 지켜줄 수 있다.
3연. 이 아저씨는 분명히 청혼의 대상을 오랫동안 사랑했을 텐데, 지금와서 그들이 순수했던 시절 했던 맹세들을 다시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고백의 반복은 똑같은 말을 다시 들려주는 추억팔이가 아니다. 이 아저씨는 청혼의 대상과 함께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동안 아저씨는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돌려준다고 말하는 말투를 보아하니 뭔가 나름의 답을 찾아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찾아낸 척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나긴 술래잡기동안 아저씨는 큰 성장통을 겪었을 텐데 그 옆에 청혼의 대상이 손을 잡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무튼 장마철 같은 성장통을 겪은 후의 아저씨가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라고 말하는 것과 스무살 시절의 아저씨가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라고 말하는 건 다른 행위이다. 강백호가 소연이에게 첫눈에 반하고 좋아합니다 말하는 것과 산왕과의 혈투 와중에 정말로 좋아한다고요 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끌림은 나의 자아를 수동적으로 빼앗기는 행위이고 사랑은 곱씹고 곱씹은 후에 나의 자아를 능동적으로 배분하는 일이다. 긴 술래잡기 후에 아저씨는 어린 아이의 미소를 보이는 노인처럼 순결한 고백을 다시 읊조린다.
자기도 자기가 멋진 걸 아는지 4연에서 이 아저씨 조금 더 상기됐다. '별들'이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릴 만큼.
마지막 5연. 스스로 술래잡기하며 성찰하고 과거와 미래에 아첨하지 않으며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강한 사람은 스스로 행복을 찾을 줄 알고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 요컨데 미래에 아첨하지 않는 것도 스스로 행복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과 미래를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강한 사람은 누구도 사랑해줄 수 있다. 심지어 나를 금방 떠날 것 같은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왜냐면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고 나 스스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던 걸 이해하고 그 사람을 그 사람 있는 그대로 지켜줄 수 있다. 클럽가고 싶어하는 여자친구 클럽 보내줄 수 있다. 왜냐면 그게 그 사람의 행복이니까. 그러다가 그 사람이 나를 떠나고 싶으면 보내주고 나는 나 행복하게 살면 되니까.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는 순간 어려운 질문이 생긴다. "그럼 도대체 누구를 사랑해야하는 거야?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 다 사랑해?" 이 아저씨는 토론의 귀재처럼 답을 다 가지고 있다. (내가 억지로 답이 나오게 글을 쓰고 있는 걸지도;;) 끌림은 우연이고 사랑은 필연인데, 이 아저씨에게 청혼의 대상은 필연이다.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이 아니고, 어느 날은 우연히 있다가 어느날은 우연히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오래된 거리처럼 항상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저씨에겐 필연이기 때문에 아저씨는 청혼의 대상을 사랑한다. 아저씨도 생색을 낸다. '인류가 아닌'이라는 말을 굳이 언급한 건, 사실 본인은 인류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인데에도 불구하고 '단 한 여자를' 사랑하겠다는 거다.
이 아저씨는 그 필연의 대상을 위해 결연히 '쓴 잔을 모두 마'실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중요한 말들이 남아있다. 아저씨가 쓴 잔을 다 마신 후에도 물컵 안에는 '슬픔'이 담겨있다. 쓴 물을 다 마셔버린 물컵은 비어있거나 행복만 있을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투명 유리 조각이 물컵 안에 남아있다. 아저씨는 알고 있다. 결혼을 이룬 이후에도 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는 서로에게 완전한 환희를 이뤄줄 마지막 퍼즐 조각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를 환희의 마지막 조각으로 여기는 순간 상대방을 도구로 여기게 되거나 상대방을 위한 도구가 되고 집착이 되고 도착이 된다. 결혼 이후에도 슬픔이 물컵 안에 남아있을 거란 사실을 아는 아저씨는 지금 청혼하며 시를 쓰듯이 결혼 이후에도 계속 시를 쓸 것이다. 스스로 행복한 것이 같이있을 수 있는 방법이고 그게 상대방의 행복이니까. 그 지혜는 이 아저씨가 다이아 대신 내밀 수 있는 값진 보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