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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Mar 26. 2024

세상이 너를 속일지라도

-푸시킨을 읽고

[러시아 문학작품 읽기 모임 후기]

지난 1월부터 러시아 문학작품 읽기 모임에 함께했다. 첫 독서 과제는 푸시킨이었다. 2월 첫 읽기 과제작품은 <대위의 딸>로 정했다. 3월의 과제는 역시 푸시킨이었는데 무려 여섯 작품이 선정됐다. 벨킨 이야기, 스페이드 여왕, 모짜르트와 살리에리, 예브게니 오네긴, 루슬란과 류드밀라, 청동 기마상이었다. 작품 수로 보면 희곡과 운문소설, 그리고 중편과 단편소설 합해서 열 편이었다. 러시아 문학에서 차지하는 푸시킨의 위상을 실감했다. 푸시킨을 읽는 두 달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과 일깨움을 주었고, 함께하는 독서의 기쁨은 덤이었다.     


푸시킨! 처음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단박에 떠오른 한 편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우리의 백석이 번역했음은 이번 공부에서 알았다. 백석의 러시아어 실력은 조만식 선생의 러시아어 통역을 맡을 정도로 뛰어났다. 백석의 푸시킨 번역은 그래서 자작시처럼 아름답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저자 이현우 교수는 3월의 초청 강연에서 ‘백석의 푸시킨 번역 시’를 두고 번역과 창작이 반반이라 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지금은 언제나 슬픈 것이니

모든 것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나간 것은 또 그리워지나니     


아득한 기억은 1960년대로 날아가 제주 섬나라 구엄 국민학교 서편 언저리에 있던 이발소 안으로 들어간다. 학교는 제주시 서쪽 40여 리(里) 밖에 있었다. 그곳은 하귀리와 애월리 사이에 치여서인지 지금도 큰 변함 없이 한미한 동네다. 학교 교문 앞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섬을 한 바퀴 도는 신작로가 지나간다. 일제 강점기에 스스로 그 길을 닦은 사람들은 싱겁게 ‘일주도로’라고 불렀다. 그때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울퉁불퉁 비포장 자갈길이었다. 큰비가 내려 웅덩이가 파이면 버스는 황소처럼 날뛰며 달렸다. 머리통이 천정에다 박치기하는 일이 예사였지만 버스 기사에게 군소리하는 승객은 없었다.     


사철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이발소 바로 붙어 버스정류장이랍시고 세운 둥그런 머리 표지판은 바닷바람이 몰아치면 술 취한 남정네처럼 휘청거렸다. 여섯 자 길이에 시멘트로 네모나게 돋음 한 승차장에는 언제 올지 모르는 기다림에 지친, 성내(城內)가는 단봇짐이 오롯이 놓여 있었다. 버스 대가리가 보이라고 신엄리 고갯마루를 향해 목을 돌려 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늘 불안하다. 외로운 섬나라는 그때 그랬었다.   

  

이발소 미닫이 유리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벽이었을 것이다. 푸시킨의 시 구절이 적힌 이른바 쫑쫑이 풍경화 액자가 걸려 있던 곳. 시 구절 모두가 적혀 있었는지 앞 연만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이발소 주인은 걸음걸이가 몹시 불편한 삼춘이었는데, 어릴 적 소아마비 때문이었다. 참고로 ‘삼춘’은 섬나라 사람들이 동네 이웃 아저씨 아줌마를 스스럼없이 말할 때 쓰는 명칭이다. 이발소 잡무를 돕는 조수를 일본식으로 ‘시다’라 불렀는데, 악바리로 소문난 동네 선배가 그 일을 맡아 하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포기한 동네 형은 중등 검정고시를 위해 통신교육을 몇 해째 계속하고 있었다. 선배의 독학은 순전히 가난 때문이었다. 손님 머리를 감기고 바닥 빗질 청소를 하며 강의록 책값과 수강료와 몇 푼의 용돈을 벌었다. 당시 통신학교 안내서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다. “오직 자신의 일관된 정성과 노력으로 이십 세의 소년이 두 사람씩이나 한꺼번에 의사시험을 무난히 파스하야 이때의 젊은 독학 청년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복도다주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이발소를 꾸려가는 두 사람이 푸시킨을 제대로 알기나 했으랴만,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라’는 글귀는 그들에게는 위로였을 것이다. 그 시절 까까머리 어린 손님인 나조차도 이발소를 찾을 때마다 액자에 눈길이 갔으니 드나드는 사람마다 무엇이라도 느꼈으리라. 아, 푸시킨은 위대하여라!   

  

제주 변방의 섬은 한국전쟁에 앞서 1948년 4월부터 참혹한 비극을 겪었다. 정부의 공식 통계로도 3만여 명이 희생된 제주4·3 학살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제주 민중에게는 여전히 악몽이었고 가위눌림이었다. 빨갱이 섬이라는 공포와 거미줄 같은 연좌제 속에서 오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푸시킨이 저항했던 압제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섬나라 민중이 흘린 피와 감내한 고통은 러시아 민중의 그것보다 가볍지 않았다.     


푸시킨은 차르의 전제군주정 타파와 개혁을 위해 분투하는 <12월 당원>들인 데카브리스트를 생각하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썼다.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진압되어 주모자 다섯 명은 처형되고 나머지 당원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당했다. 푸시킨은 그의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체제를 희망하며 농노해방과 자유를 갈구했다. 말하자면 그는 진보 사상을 공유한 운동권이었다. 이는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민중으로부터 숭배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발소 삼춘은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은 성장해서 나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당시 ‘시다’ 형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아들에게 미루었다. 아들은 대한민국 판사로 봉직하고 있다. 푸시킨의 몇 마디가 얼마나 그들에게 힘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푸시킨의 작품에는 격동의 시대에 자기 존재 그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 그의 정신이 알게 모르게 스며있다. 더구나 민중의 언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런 점이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이발소 그들에게 두어 마디 시 구절이면 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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