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맞은편에 앉은 여자에게 시선이 무심코 머물렀다. 체격 좋은 사십 대 초반의 여자로, 광택이 있는 빨간 블라우스에 검은 타이트 치마를 입고 뭉툭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억세게 세상을 헤쳐온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강인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입술은 블라우스 색깔에 맞춰 붉게 칠했고, 다리를 꼭 모으지 않아 단단한 허벅지가 무심히 보였다. 여자는 두툼한 손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폴더를 열었다가 이내 닫았으며, 초조한 얼굴로 허공 어딘가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막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참이었는데, 순식간에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마스카라를 까맣게 번지게 하며 흘러내렸다. 여자는 그걸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허공 어딘가를 보고만 있었다. 그때 알았다. 주변의 어떤 것도, 어떤 시선도,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불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애써 눈물을 감추는 사람, 그토록 잘 감추다가 한순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뜨거움에 놀라는 사람, 문득 새벽에 깨어나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는 순간, 그 순간들을 밀고 끌며 변함없는 리듬으로 의연히 교차 되는 밤과 낮들.
집요한 밤과 지워진 꿈들. 정적과 숨겨진 노래들. 다시, 감춰진 눈물들. 불현듯 선명히 떠오르는 꿈들. 다시, 숨겨진 노래들. 다시, 감춰진 눈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