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라라라……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라라라……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언제든 눈앞에 그릴 수 있는 풍경이다.
외할아버지가 몸소 한뎃잠을 주무시며 지어주셨다는 아담한 한옥문을 열고 나가면 맞은편에 호남정유 건물의 긴 담이 보이고, 집 오른편 옆에는 채석장이 붙어 있다. 포장은 되지 않았지만, 반듯이 닦인 길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면 문방구가 하나 나오고, 거기서 왼쪽으로 다시 틀면 효동초등학교가 나온다. 전학을 자주 다닌 초등학교 시절, 그중 가장 오래 다녔던 학교다. 운동장 절반이 플라타너스 그늘인데, 오전반 오후반이 있던 때라 오후반 아이들은 그 그늘 아래 반별로 줄을 서서 교실이 비기를 기다린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인 곽창남 선생님이 4학년 3반 팻말 아래에 레이스를 뜨고 계신다. 천사처럼 예뻐 보인다. 갑자기 내 어깨에 송충이 세 마리를 올려놓고 달아나는 짓궂은 남자아이들, 기어이 붙잡고 말리라, 나는 엉엉 울며 쫓아 뛰어간다.
집 옆의 채석장은 일요일엔 쉬었는데, 따로 담장이 없어서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었다. 어른 키만 한 화강석 수십 개가 다듬어지지 않은 채 널려 있는 그곳은 숨바꼭질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바위에 등을 붙이고 숨어 있자면, 햇볕에 따뜻하게 달구어진 돌의 온기가 기분 좋게 온몸으로 퍼졌다. 평일에는 채석장에서 또깍또깍 정으로 돌 깨는 소리가 제법 시끄러웠지만, 아이여서 그랬는지 나에겐 그리 싫게 들리지 않았다. 채석장 앞에는 아저씨들이 모래며 돌이며를 수북이 쌓아놓았는데, 모래성 만들기에 참 좋은 장소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늘 거기 와서 나와 함께 놀았던 남자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고, 키가 작은 아이여서 내가 ‘땅콩’이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그 아이는 집이 꽤 멀었는데도 늘 우리 집 앞에서 놀았다. 주로 모래성을 쌓으면서 놀았는데, 그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왜 그렇게 따뜻했던지.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흐르던지. 저녁 먹으러 들어가야 할 시간이 못 견디게 싫었다. 나는 그 아이랑만 놀고 그 아이는 나랑만 놀던, 같이 있으면 아무 이유 없이 좋던, 아무것도 안 해도 좋던, 학교에서 만나서도 종일 같이 있고 싶던 마음.
3학년에 올라가며 아이들이 조금 철이 들자 여자아이 남자아이가 그렇게 친한 걸 놀리기 시작했다. 누구는 누구랑 결혼할 거래요, 집요한 노래들. 화장실의 낙서들. 그 아이도 나도 어쩐지 어색해져서 그때부터는 예전처럼 놀 수 없게 되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르게 멀어져서, 조회 때면 멀리 서 있는 서로를 곁눈질만 하다가 내가 전학을 가며 영영 못 보게 되었다.
이제 그 아이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겠지. 유난히 얼굴 까만 여자애랑 놀았던 것, 혹시 기억에 남아 있으려는지.
한강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혜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