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93~95쪽
눈 결정(結晶)이 생기는 원리를
시적 산문으로 표현한 눈 박사 한강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창 너머의 안 보이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항의하는 듯 그녀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물었다.
눈의 아름다움이란 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정거장을 향해 나아가며 생각한다. 바람이 멎은 것같이 이 눈도 갑자기 멈춰주지 않을까. 그러나 눈의 밀도는 오히려 점점 높아지고 있다. 회백색 허공에서 한계 없이 눈송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하나의 눈송이가 태어나려면 극미세한 먼지나 재의 입자가 필요하다고 어린 시절 나는 읽었다. 구름은 물 분자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다고, 수증기를 타고 지상에서 올라온 먼지와 재의 입자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두 개의 물 분자가 구름 속에서 결속해 눈의 첫 결정을 이룰 때, 그 먼지나 재의 입자가 눈송이의 핵이 된다. 분자식에 따라 여섯 개의 가지를 가진 결정은 낙하하며 만나는 다른 결정들과 계속해서 결속한다. 구름과 땅 사이의 거리가 무한하다면 눈송이의 크기도 무한해질 테지만, 낙하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
그 설명들 곁에 실려 있던 눈 결정들의 사진을 기억한다. 컬러 도판을 보호하기 위해 얇은 기름종이가 함께 제본된 책이었는데, 그 반투명한 종이를 넘기자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한 결정들이 한 면 가득 펼쳐졌다. 그 정교함에 나는 압도되었다. 몇몇 결정들은 정육각형이 아니라 매끈한 직육각기둥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눈과 비의 경계에서 그런 형태를 지닌다는 설명이 작은 글씨로 하단에 적혀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진눈깨비가 내릴 때면 그 은빛의 섬세한 육각기둥이 생각났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엔 짙은 색 코트 소매를 허공에 내밀고서 보풀에 맺힌 눈송이가 물방울이 될 때까지 들여다 봤다. 도판에서 본 것 같은 정육각형의 화려한 결정들이 그 안에서 수없이 결속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지러웠다. 눈이 지나간 뒤 한동안은 잠에서 깨며 감은 눈으로 생각했다. 밖에 눈이 오고 있을지도 몰라.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지루한 방학숙제를 하다 말고 방안에 눈이 내린다고 생각했다. 방금 거스러미¹⁾를 뜯어낸 손 위로, 머리카락과 지우개 가루가 흩어져 있는 장판 바닥 위로.
이상하지 눈은, 하고 병실 창밖을 향해 중얼거렸을 때 인선이 떠올린 것도 그런 것들이었을까.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창 너머의 안 보이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항의하는 듯 그녀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물었다. 눈의 아름다움이란 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오래전 세밑의 밤에도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던 것같이.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흰 털실로 뜬 모자를 쓴 것처럼 그녀의 머리에 눈이 쌓여 있었다. 파카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내 두 손은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우리가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소금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옮긴이 註]
1) 거스러미(hangnail, agnail, stepmother's blessing)란 사람 손톱, 발톱의 주변을 덮고 있는 살과 손톱, 발톱이 맞닿은 부분에 있는 살이 일어나거나 벗겨져 염증, 통증을 일으키는 것, 또는 그런 상태에 있는 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역에 따라서 끄스름, 끼시름, 끄스럼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