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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an 02. 2025

사랑에 대한 정의

-문상길 중위를 추모하며

나름의 전설이 하나 있다. 총살당하기 직전 그는 총살대 병사들 머리 위로 태양이 빛나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목숨을 바친 사랑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말들이 뛰노는 들판 너머

소들이 새김질하는 돌담 너머

바람이 구름을 몰아가는 오름 너머

풍경들을 기억해 두는 것.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의 무덤 너머

풍경들을 기억해 두는 것.     


우리가 사랑에 이끌려 나오는 순간

싸락눈은 얼마나 휘몰아 내리는지

기억해 두는 것.   

  

우리가 가까운 이에게 사랑을 상기시키는 순간

비포장 신작로 위로 부서져 내린 하늘을

기억해 두는 것.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설명받는 순간,

초가지붕 위로 흘러내리는 붉은 빗줄기는

어떻게 삶의 터전을 일그러뜨리는지

기억해 두는 것.     


숨을 곳 없는 곶자왈 위로

마지막 남은 곧은 총구가

어떻게 십자가를 내미는지

기억해 두는 것.     


달 밝은 밤이면

나무 또는 사람이 드리우는 긴 그림자를

기억해 두는 것.     


별이 빛나는 밤이면

늙은 아버지의 주름처럼 반들거리는

바다의 무거운 파도를

기억해 두는 것.    

  

그리고 새벽녘이면

산사람이 이슬을 밟으며 돌아서 나오는

하얀 길을 기억해 두는 것.  

   

토벌대들의 낯선 목덜미 위로

태양은 어떻게 떠오르는지

기억해 두는 것.      


 -조지프 브로드스키의 詩 『시에 대한 정의』를 변주함.

제주4.3발발 당시 모슬포 주둔 9연대 장교들-아랫줄 오른쪽 끝이 문상길 중위 , 맨 왼쪽이 이세호 대위, 두사람 건너 연대장 김익렬 대령, 심흥선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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