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고리키의 단편소설
숲속의 계곡이 황톳빛 오카강¹으로 완만하게 이어져 있다. 계곡 아래로 계곡물이 풀숲을 헤치며 달려간다. 밤이 되면 계곡 하늘 위에는 낮에는 보이지 않던 푸르른 하늘의 강이 떨리듯 흘러가고, 별들이 그 속에서 황금 농어²처럼 노닌다.
계곡의 남동쪽 기슭에는 나무들이 빽빽하고 어지럽게 자라 있다. 그 한가운데, 가파른 절벽 밑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입구는 굵은 나뭇가지들로 잘 엮어놓은 문으로 가려져 있다. 동굴 앞에는 자갈로 잘 다진 가로세로 2미터가량의 작은 마당이 있고, 거기서 계곡 아래 쪽으로 큰 돌계단이 이어져 있다. 동굴 문 앞에는 보리수나무와 자작나무, 단풍나무 등 어린나무 세 그루가 있다.
잘 매만져진 동굴 주변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굴 내부도 아주 견고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벽과 둥그런 천장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붙이고 그 위에 강바닥의 점토를 이긴 진흙을 매끄럽게 발라놓았다. 입구 왼편에는 자그마한 난로가 있고 한쪽 구석에는 성경탁자³가 놓여 있다. 탁자 위에는 비단처럼 촘촘히 짠 보리수 보가 덮혀 있고 그 위 쇠고리에는 램프가 걸려 있다. 파르스름한 램프 불꽃은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흔들리고 있다.
탁자 앞에는 세 개의 검은 성상이 있고 벽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새 신발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바닥에는 나무 내피가 깔려 있어 향긋한 마른풀 냄새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
이곳의 주인은 중키의 늙은이였는데, 당당한 체구지만 어딘지 몹시 망가져 보이는데도 흉터투성이였다. 벽돌처럼 불그죽죽한 얼굴은 보기 흉했고, 왼쪽 뺨에는 귀에서부터 턱까지 깊은 흉터가 나 있어 입이 일그러지기라도 하면 어딘가 아프거나 뭔가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연출했다. 결막염 때문인지 속눈썹은 빠져서 하나도 없고 눈꺼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붉은 흉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머리칼은 군데군데 한줌씩 빠지고 툭 튀어나온 정수리와 왼쪽 귀 위에는 머리카락이 없어 귀가 훤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 늙은이의 동작만큼은 족제비처럼 민첩했고기괴한 눈길은 부드러웠다. 웃을 때면 얼굴의 흉터들은 얼굴 가득히 번지는 부드러운 주름살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색이 전혀 바래지 않은 고급 셔츠와 알록달록한 무늬의 푸른색 바지를 입고 끈으로 엮어 만든 신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각반 대신 토끼 가죽을 무릎까지 두르고 있었다. - 고리키의 <은둔자> 첫머리 中.
-----
[註]
1) 오카(Ока́)강은 길이 1,480㎞, 유역면적 24만5천㎢인 볼가강 최대의 지류이다. 중앙러시아 고지(해발 고도 260m)에서 발원한다. 이 강에 접해 있는 도시는 콜롬나, 니즈니노브고로드, 제르진스크, 랴잔, 오룔 등이다.
2) 황금색 비늘의 농어는 검정 농어와 파랑 농어에 비해 희귀하고 어부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황금 농어” 또는 “황금 베스”로 불리는 물고기는 실존하긴 하지만, 특정 환경이나 유전적 요인 덕분에 생긴 매우 희귀한 색 변이로 볼 수 있다.
3) (原註)성경탁자 : 교회에서 성상이나 책을 놓는 다리가 높은 탁자.
막심 고리키의 단편소설 〈은둔자〉(The Hermit) 는 인간의 자유와 영혼의 해방을 다룬 작품으로, 고리키 문학 세계의 핵심적 정신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 작품은 외부 세계와 단절한 채 숲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한 은둔자와, 우연히 그를 찾게 된 한 청년의 만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청년은 문명 세계의 가치와 삶의 목적에 대한 혼란 속에서 방황하다가 은둔자를 찾아가 질문을 던진다. 은둔자는 오랜 침묵 속에서 자연과 자신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진실을 들려준다.
그는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때, 인간은 스스로를 속박하는 감옥을 만든다고. 인간이 타인의 명령이나 관습, 제도 속에서 움직일 때 그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는 노예’가 된다고. 그가 숲에 들어와 은둔자가 된 것은 사회를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참된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은둔자는 야생의 새가 자유롭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 또한 억압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게 창조하고 노래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청년에게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그 길을 가라”고 조언하며, 청년의 영혼 속 잠든 불꽃을 깨운다. 이야기는 청년이 숲을 떠나며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고리키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본질과 자유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다. 〈은둔자〉의 중심 주제는 인간 정신의 해방과 자아 실현 가능성이다. 고리키는 인간이 사회적 압력과 제도의 굴레 속에서 살아갈 때 진정성을 잃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라고 믿었다. 이 작품의 은둔자는 현실을 도망치는 회피자가 아니라, 진실을 바라보기 위해 세상과의 거리를 스스로 선택한 존재다. 그는 인간이 자유를 향한 자기 선택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다고 말한다.
작품 속 청년의 여정은 내적 성장의 서사이며, 이는 고리키 문학의 핵심 구조 중 하나이다. 사회적 억압 속에서 깨어나는 인간의 의지, 그리고 절망 속에서 다시 불붙는 희망은 고리키가 평생 추구한 문학적 가치였다. 그는 인간을 단순히 현실의 피해자로 그리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모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래서 고리키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길 위’에 있다. 〈은둔자〉의 청년 역시 고통과 혼돈 속에서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 존재다.
또한 이 작품은 예술과 자유의 관계에 대한 고리키의 생각을 반영한다. 새의 노래를 “너의 날이 밝았다, 마음껏 노래하라”라고 장려하는 장면은, 억압 없는 예술과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를 상징한다. 고리키에게 예술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힘이며, 영혼 속 잠든 선한 자질을 일깨우는 힘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는 혁명기 러시아에서 문학을 단순한 미적 장르가 아니라, 사회적 변혁을 이끌어 내는 정신적 무기로 보았다.
〈은둔자〉는 한 청년의 성장 이야기이자, 모든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순응하며 ‘살아 있는 노예’로 남아 있는가? 고리키는 말한다.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꿈꿀 때, 그 영혼은 비로소 날개를 단다고.
〈은둔자〉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목소리다.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고, 권력의 목소리가 개인의 목소리를 덮으려 할 때, 고리키의 은둔자는 우리에 말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살아가라.
Edward Daniel Clarke. Travels in various countries of Europe Asia and Africa. Part the First Russia Tartary and Turkey (1810). Part the Second Greece Egypt and the Holy Land (1813). London, R. Watts for Cadell and Dav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