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구엄리 옛이야기-7화
꿩사냥
광령 옹기가마 굴대장 어울돌은 가을볕에 말린 쇠똥과 말똥, 고시락과 솔섶, 토막낭과 톱밥을 윗굴 어귀에 잔뜩 쌓아놓았다. 그리고는 꿩사냥을 생각했다. 꿩들이 털갈이를 하느라 멀리 날지 못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어울돌은 가마굴에 헛불을 놓기 전 꿩을 잡아 사람들을 먹이고 싶었다. 얼마 전부터 석례는 꿩조배기를 만들려고 모멀을 돌고레에 곱게 갈아 가루를 내었다.
석출은 어릴 적 눈 쌓인 한겨울 물메봉에서 동무들과 토끼 몰이를 해 본 적은 있었다. 번번이 산토끼를 놓쳐 허탕 치기가 일쑤였다. 석출은 꿩사냥에 사냥개까지 데리고 간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꿩들이 포동포동 살이 오를 계절이다. 소금 팔 일을 제쳐두고 사냥에 따라나서기로 했다. 석례는 갈중이 적삼 바지에 흰 수건을 머리에 동여맸다. 한두 번 사냥 나가 본 차림이 아니었다. 그는 말을 걸고 싶어 눈치를 살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꿩사냥에는 가마굴 흙 고르는 질대장, 물레 돌리는 도공장, 불 굽는 불대장에다 석례도 따라 나선다고 고집을 피웠다. 석출과 잔 나뭇가지를 거두는 초동 아이도 따라나서 사냥패는 모두 일곱이 되었다. 사냥개는 불대장이 오래전부터 키우는 전통의 제주개였다. 나이 들어 힘이 빠지긴 했지만, 눈치가 빠르고 순발력이 뛰어났다. 불대장은 사냥개를 멍구라 부르며 식구처럼 아꼈다. 멍구는 한창일 때는 용맹하고 민첩해 돈내코에서 노루는 물론 맷돼지까지 잡았다며 미녕 혼 필을 줘도 안 바꾼다고 자랑질을 했다. 넓은 이마와 여우 입술에다 귀가 뾰족한 멍구는 뭉뚝한 빗자루 같은 장대꼬리를 꼿꼿이 위로 세웠다. 검정 털에 섞인 짙은 황색 털빛이 영락없는 순혈통 섬나라 제주개였다. 평소엔 순하다가도 사냥에만 나서면 달라졌다. 재빠르고 영민했다.
오을돌이 사냥터로 삼은 돈내통(豚川通)의 광활한 초지에는 이날 하늬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간간이 돗궹이바람이 불 때는 가분 새왓과 어윽새 들판이 해일처럼 출렁거렸다. 오을돌 패장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았다. 꿩을 날릴 사람과 망지기, 그리고 꿩잡이로 패를 셋으로 갈랐다. 그러고는 각 패에게 임무를 시작할 장소를 하나하나 손으로 가리켰다. 꿩을 날릴 불대장과 질대장은 초동 아이와 사냥개를 데리고 위쪽 들판으로 달려갔다. 석례와 석출은 망보기로 뽑혀 동편과 서편 끝으로 갈렸다. 둘은 멀리 마주 보며 바위 위에 섰다. 도공장은 오을돌과 함께 마지막으로 꿩을 잡는 역할을 맡았다.
오을돌이 석출에게 망보기에 대해 가르쳤다. “울럿이 서지 말앙 몰이패 앞으로 꿩이 날아가믄 ‘느 아방 감저’ 허곡 뒤로 날아가믄 ‘느 어멍 감저’ 허믄 되네” 이어서 오을돌은 손가락 세 개를 펴며 말했다. “세 발탕만 하면 놈들이 지쳐 대맹이를 풀뿌리에 박앙 어신 첵 헐거난 한 놈을 찍엉 이래 도르락 저래 도르락 허게 몰아야 해” 몰이꾼에게 몰려 꿩이 한 번 날았다 앉는 횟수를 ‘한 발탕’이라 불렀다.
오을돌이 오른팔을 크게 돌렸다. 몰이가 시작되었다.
몰이꾼들이 한꺼번에 입을 맞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곧 작대기를 휘두르며 빠른 걸음으로 경사진 들판을 내려왔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장꿩 한 마리가 긴 꼬리 깃털을 끌며 하늘로 날아 올랐다. 뒤이어 까투리 두 마리가 허겁지겁 따라 날았다. 석례가 손가락을 불대장 뒤로 가리키며 먼저 소리를 질렀다. “불대장, 장꿩 느 어멍 감저!” 이어 석출이 질대장 앞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느 아방 감저“ 사냥패들은 꿩을 몰아 소리를 지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나에 집중허라“ 오을돌은 사냥패들이 산만해지는 걸 경계했다.
사냥패가 노린 장꿩은 살의를 느꼈는지 있는 힘을 다해서 불대장 머리 위를 넘어 날아가버렸다. 몰이패들이 멍구와 함께 달려가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넓은 들판은 ‘느 아방이여 느 어멍이여’ 하는 고함 소리와 사냥개 짖는 소리에 소란스러워졌다. 일순 바람이 쏴 하고 들판을 쓸고 갔다. 세 발탕이 넘자 기진맥진한 장꿩은 풀숲에 대맹이를 박고 없는 척을 했다. 불대장이 이때다 하고 멍구를 풀었다. 곧장 앞으로 달려간 멍구는 억새 아래 숨은 장꿩의 목을 단박에 물어 숨통을 끊었다. 멍구는 꿩을 그 자리에 남긴 채 되돌아 달려오고, 오을돌이 달려가 숨이 끊긴 장꿩을 들어 올렸다. “질대장 저쪽 까투리, 느 아방 감저” 가는 팔뚝을 죽지 앞으로 내지르며 석례가 소리를 질렀다. 목청 터지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들판을 울렸다. 바람결을 타고 퍼지는 목소리는 싱싱하고 푸르렀다.
장끼 여섯에 까투리 넷, 열 마리를 채우고 오을돌은 팔을 가로로 저어 사냥의 끝을 알렸다. 꿩들은 하나같이 살이 올랐다. 다섯 마리씩 꿩을 매단 나뭇가지가 묵직했다. 집까지는 산길을 걸어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오늘 사냥은 소득이 좋아 어을돌은 기분이 좋았다. “석례가 어서시믄 고망독새 이야기 해줄 건디” “고망독새가 뭐꽈, 한양서 온 거문대기 하루방이 굴뚝새랭 헙디다“ 초동아이가 끼어들었다. ”허허 이눔 보게, 아멩 유식해도 그자는 유배 죄인 아니가. 우리 섬에선 우리 제줏말이 옳은 거지“ 하며 껄껄 웃었다. 불대장이 어울돌을 쳐다보며 말했다. ”거 고망독새 난 들었주마는 석례가 무신 어린 아이꽈 고라봅서“ 뜸을 드린 어울돌은 석례를 힐긋 보더니 ”경허믄 혼 번 고라보카?“ 하며 헛기침을 삼켰다.
옛날에 할루산이서
장꿩광 암꿩이 살았는데
의가 경도 좋았댄 허여
호로는 보리밭 쏘곱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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