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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정 하나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고

가을이 멀어지나보나.

여름내내 푸르름을 과시하던  은행잎이

누런 색의 옷을 입고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인도(人道) 위에 수북히 쌓여있다.


가을 하늘은 높다 했던가?

구름 한점 없이 짙푸른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빛을

전혀 걸러내지 못하고  민낯을 드러낸다.


주일아침.

나는 여느 때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예배당으로 달려갔다.


보도블록으로 채워진 인도는

휠체어를 탄 나에게

곤욕(困辱)스러움을

제공한다.


울퉁불퉁한 노면(路面)은

튀어 오르다 가라앉을 때마다

허리에 큰 충격을 안긴다.


어느 정도 앞으로 나아갈 때

청소부가 이른 새벽에 청소하다가

인도 끝자락에

모아놓은 은행잎더미가

눈앞에 들어온다.


나는 색다른 느낌을 가지고

마치 양탄자 위를 지나가는 느낌으로

미끄러지듯이

은행잎더미 위로 지나갔다.


어느 정도 나아갔을까?


갑자기 휠체어 뒷바퀴에서

이상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터덜 터 터덜 쿵쿵 푸북 쿵.."

무슨 소리일까?

떨어진 은행잎이 휠체어 바퀴에

끼어있나?


휠체어 위에 앉는 나에게

휠체어 뒤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소음이 더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왜 그러지?

길에서 잠간 멈추어보니

휠체어 뒷바퀴 하나에

빛나는 둥그런 쇳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압정(押頂)"이었다.


"아뿔사 타이어에 펑크가 났구나."


나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아니 어디에서

 타이어에 압정이 박혔을까?"


무의미한 원인추궁에 들어갔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한 지

벌써 15년째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인도(人道)보다 차도(車道)의 노면이

더 깨끗하여 안전하게 다니느라

조심조심 했는데

하필 이 좋은 가을날씨에

예배당 가는 길에 무슨 낭패인가?


결국 은행잎 더미 아래 숨기웠던

압정 하나가 나의 발 길을

멈추게 만든 것이다.


갑자기 겨울이 임박했는지

찬바람이 스물스물 옷깃 사이로 들어온다.


나는 장애인 콜 택시를 불렀다.

여느 일요일에는 3~4대가 대기상태인데

오늘은 9대나 대기(待期)를  해야한다.


한시간 반이나 지나갔을까?

길  한 가운데에서 벌벌 떨다가

장애인 콜 택시에 올랐다.

"휠체어 타이어 하나

 바람 빠진 것을 아시죠?"


기사는 나에게 알려준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갔다.


압정 하나 때문에

하루일정은 멈추었다.

예배당에도 가지도 못하고.


세상사(世上事)가 다 그렇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가

기계를 멈추고

제아무리 고가의 자동차도

작동을 멈추게 한다.


지극히 작은 것을 무시하다

큰코 다치고 만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다수(多數), 큰 것, 높은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기는 이 세상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의 가치"

일깨우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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