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찍 퇴근했다.
약속이 있는데
예정보다 두시간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별다방에 앉아서 자조론을 펼쳤다.
테니슨의 싯귀가 눈에 들어온다.
"누가 늘 의젓할 수 있으리
이 사람 외에. 수많은 추억이 있지만.
상냥함을 잃지않고 그 어느 때나
사람들과 사귀던 우아한 선비.
고상한 모습이 꽃과 같더라
이 사람이 타고난 우아한 마음.
그래서 욕 없이 듣던 이름
'신사' 아, 숭고하도다."
우아하고 고상한 싯귀를 읖조리는데
삼각형 테이블에 앉은 객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누는 잡담들이
뒤섞여 귓전을 울린다.
한 구석 귀퉁이에서는
수담(手談)이 쉼없이 오고간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무척 요란하고 큰 소음(騷音)이
안구(眼球)의 습기가득한 면을
거친 파동으로 두드린다.
바로 옆 자리의 십대후반
아니 이십대 초반의 청년들은
꺄르륵 웃음소리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고막(鼓膜)을
찢고 있다.
나는
사뮤엘 스마일즈(Samuel Smiles)의
자조론(自助論)에
집중하기 위해 모든 촉각을 곤두 세웠다.
"인격(人格)이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
그럴듯한 글귀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런 분위기가 제공되는 공간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컴퓨터를 보며 근무를 하고
책을 보면서 하루종일 지낼 수 있을까?
그들의 정신능력은 신묘막측하다.
어제 아침에 일어난
무안사태에 대해서
옆 좌석의 청년 둘은
동일한 항공사의 비행기를
계속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고 논리적으로 토론한다.
아마 이들의 관심사에는
무안사태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애도(哀悼)하는 마음은
전혀 없는 것과 같다.
그래 이 땅을 떠나고 있는
영혼들에 대해 애도하는 심정을
강요한다면
일년내내 밝은 표정을 지을 날을
손꼽아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이들과는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겠지?
세상에는
희노애락애오욕의 순간과 일화가
동시에(simultaneously) 일어나기에
공감의 기회도
다양하리라.
나는
지금도 다양한 주파수를 가진
수다 속의 수다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