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왔잖아요
성부장의 목소리는 바리톤 정도의
깊고 굵은 저음이었다.
이 한마디 말로
용서가 안된다는 사실 잘 알고 있지요.
그렇지만 어찌합니까?
제가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성부장의 낮은 톤이
거실을 둔탁하게 두드리며
작은 메아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잘 아시죠?
저 약 10년간 장돌뱅이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이 무엇인지,
가족이 어떤 것인지
내가 돈을 번다고
방방곡곡 돌아다닐 때
아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
혼자 아이들을 어떻게 길렀는지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물론 이런 말이
핑계거리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
성부장이 담담하게
과거를 풀어가고 있을 때
맹여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성부장의 고백은 계속 이어졌다.
"10년쯤 되었을 때,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작은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직장의 규모가 커지고
사업이 확장되면서
출장가는 빈도가 많아질 뿐 아니라
범위도 넓어졌어요
이젠 국내를 넘어서
외국까지 다녀오게 되었어요.
결국 국제적인 장돌뱅이가 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또다시
가정생활을 소홀히하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맹여사 혼자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웠겠습니까?
아이들도 아버지 있는 고아로 살았지요.
가정교육이니 또는 부모노릇이나
부부로 모범이 되는 모습은
전혀 보여준 적이 없어요.
이제 부장이란 직책을 달고 돌아와보니
아내나 아이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단지 이방인(異方人)에 지나지 않았어요.
결국 집에서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술취한 모습,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의 현재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인생도 없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나는 누구인지.
그래도 죄송하단 말 대신에
맹여사에게 고맙다고,
이런 나를 내쫓지않아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길고긴 성부장의 성찰이 담긴
고백이 전해지자
박전무가 고개를 든다.
"성부장. 자네는 나보다 낫네.
나는 자네보다 더 가정에 무관심했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맹여사와 주여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