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농암바위 찬가(讚歌)
상처 이야기는 피곤하다. 필자의 앞선 글인 「어머니의 기쁜 노래, 선반가(宣飯歌)」는 쓰는 내내 즐거웠다. 농암바위는 쓸쓸하고 아픈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나오는 지금,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바위는 농암의 표상이었다. 은둔해 세상 평가를 듣지 않으려는 농암의 소망이었다. 농암의 궁극적 지향에 대해 이성원(李性源) 박사는 신선을 추구했다고 했다. 퇴계도 신선을 추구했다고 했다.
농암이 선계(仙界)로 떠난 뒤, 바위는 뒤늦게 농암 따라 선계로 간 것일까? 기다렸지만 인세(人世)는 희망이 없어, 혹 신선되려 자연으로 돌아간 것일까? 천상병(千祥炳) 시인이 인생을 잠깐 소풍 왔다 가는 것이라고 하더니, 바위도 인간 세상에 잠시 소풍을 왔던 것일까?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억과 지식으로 저 바위를 말할 것이다. 어떤 말들이 전하여질지, 필자는 저 바위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다. 그 기억으로 기록을 더해 이렇게 적으면, 혹 그 전하는 말들에 작은 지남(指南)이라도 되지 않을지, 작은 버팀이라도 되지 않을지, 소박한 바람이다.
오래전 담양의 면앙정(俛仰亭)에 간 적이 있다. 무등산 지맥(支脈)이 뻗어 와 만들었다는 제월봉(霽月峯)과 정자 앞의 비단을 펼친 긴 강이 보고 싶었다.
당황스러웠다. 제월봉은 여전하였지만, 정자 앞의 비단을 펼친 긴 강은 어디에도 없었다. 논밭 사이로, 작은 개천이 농수로로 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사는 모습이었고, 압도적인 세월의 힘이었다.
마음의 준비 없이, 이곳을 찾은 이도 어쩌면 그렇게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차라리 이 농암의 기록을 보라. 눈을 감고 차라리 상상을 해 보라. 오히려 감은 눈이 더 밝아질 것이고, 더 고요하고, 더 편안할 것이다.
분천에서 태어나 분강을 기억하는 필자에게 이 기록은, 지금은 볼 수 없고, 앞으로도 보기 무망(無望)한, 농암바위 찬가(讚歌)요. 분강의 찬가(讚歌)다.
북쪽은, 기이하고 높은 산이 높이 솟구쳐 구름을 떠받치고 있고, 서쪽은 긴 숲이 길을 따라 울창하다. 동으로는 청량산에서 발원한 물이, 천암만학(千巖萬壑)을 돌아 흘러 내려오는데, 그 반식(半食) 경 정도 거리에 관아(官衙)의 어전(漁箭)이 있다. 성벽(城壁)을 쌓아놓은 것처럼 물길을 막았는데, 그 통발을 통해 부딪치며 아래로 떨어진 물이 큰 소(沼)를 만들었다. 그것이 별하연(別下淵)이다. 별하연 위로 절벽이 곧추 서 있고, 그 절벽 위에 병풍암(屛風庵)이 있는데, 기암괴석과 좌우의 봉우리가 물에 비치어 내려다보기조차 아찔하다. 물결은 여기서부터 잔잔해지면서, 맑고, 깊고, 깨끗하고, 빠르게 흘러 농암 아래로 내려오는데, 이곳에 와서 물결은 가득히 머물며 출렁거려, 배를 띄울 수 있다. 여기가 분강(汾江)이다.(「애일당중신기(愛日堂重新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