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진 바위글자를 보는 마음은 늘 불편하다. 새긴 취지와 관련된 장소를 떠나, 저렇게 잘려서 옮겨진 글씨가 얼마나 존재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불구(不具)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다.
잘려진 바위글자를 보는 마음은 늘 불편하다. 새긴 취지와 관련된 장소를 떠나, 저렇게 잘려서 옮겨진 글씨가 얼마나 존재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불구(不具)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다. 보기에 불편한 것을 떠나서, 농암각자의 이전에는 명백한 문제 하나가 있었다.
이제는 다 알게 되었지만, 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바로 농암바위라는 사실이다. 농암각자를 이전하기 위해 농암바위를 깨트린 것이다. 이것이 정말 문화재보호란 말인가?
어려울 것도 없다. 단순하게 물으면, 농암바위가 중요한가? 농암각자(聾巖刻字)가 중요한가? 무엇이 더 문화적 가치가 있는가? 무엇이 더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가? 그런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가? 담긴 문화적 함량을 생각하면, 농암바위가 월등한 것이다. 농암의 자호(自號)일 뿐 아니라, 수많은 시작(詩作)의 현장이었고, 시작(詩作)의 대상이었다. 각자를 폄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상대적 가치를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사백 년 문화가 서린 바위와 일제강점기의 글씨와, 어느 것에 더 문화적 가치를 부여해야 한단 말인가? 하나는 훼손된 자연바위이고 하나는 큰 글씨이니, 혹 문화재적 가치는 다를까?
만약 모두 수장(水葬)되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각자라도 건진다는 명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농암바위는 거의 물에 잠기지 않고, 아래의 각자도 겨울 갈수기(渴水期)에는 그 모습을 거의 드러내고 있다. 저 각자의 절단 이전에 무슨 실익과 명분이 있다는 말인가? 이미 수몰문화재 지정 당시, 각자는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농암바위는 유적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에서 이미 어긋나고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경직성(硬直性)이란 참으로 곤란한 것이다. 거기에 완력(腕力)이 더해지면 더욱 대책이 없다. 무지(無知)가 더해지면 일을 망친다. 무지와 완력과 경직성이 모두 합해진 것이 저 농암각자의 절단이전이 아니었을까? 인간사가 불합리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막상 내 일로, 내 눈으로 보는 일이 되면, 아쉽고 애달플 수밖에 없다.
농암각자를 절단하면서 전면의 바위는 완전히 사라졌다. ‘정대구장’바위를 떼어 내면서 본체 바위도 크게 훼손을 입었다. 훼손 정도가 아니었다. 바위 자체가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바위는 몇 개의 파편 바위가 되어, 부서진 농수로의 잔해 옆에 무엇인지도 모르게 흩어져 남았다. 저것이 농암바위란 말인가? 필자는 그 사진을 가지고 있지만, 차마 이곳에 올리지는 못하였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필자로서는 보는 마음이 쉽지가 않았다.
떨어져 나간 자암(子巖)에만 사십 여명이 올라가던 바위였다. 그 우람한 위용을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까?
원래 무명(無名)의 바위였다. 바위가 농암(聾巖)이 된 것은, 여울이 있고, 강이 있고, 사람이 있고, 온전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은 떠나고, 강은 제 모습을 잃었다. 바위도 제 모습을 잃었다.
이제 저 바위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바위의 흔적이라 할까? 잔형(殘形)일까? 잔해(殘骸)일까? 아니면 차라리 잔영(殘影)이라 할까?
기록과 기억은 남았지만, 바위의 지금도 뭐라 말할 수 없고, 앞으로는 더욱 알 수가 없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다시 무명(無名)의 바위로 돌아가는 것인지, 소박한 기대는 있다.
혹 안동댐의 수명이 다하는 날, 저 분강의 물결이 다시 살아나는 날, 혹 그때 저 바위를 두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을지, 추억으로라도 다시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지, 여름 큰 물 뒤, 바위에 떼로 올라가 있는 그 한가한 자라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눈물날 만큼 보고 싶다. 그저 쓸쓸하고 무망(無望)한 바람일 것이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