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창가를 바라보며 아이보다는 나의 건강을 위한 치료가 중요하다면서 손을 살포시 잡아주고 가셨던 교수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했지만, 우주 공간에 있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른해졌다. 고요한 빛줄기가 나를 향해 비추며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한 번의 시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고 시험관 이식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회사 출근과 정기적인 병원 검진 일정까지 빠짐없이 챙기느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처음이자마지막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혼자 주사 바늘을 놓는 아픔도 견뎌냈다. 드디어 이식하는 날. 감사하게도 동결 보관한 배아세포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시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하루의 휴식 시간도 없이 출근을 강행하면서 일에 대한 먹먹함을 느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게 주어진 삶 감사해하면서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상처의 아픔을 견뎌내는 마음이다.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창가에 비추인 여름날 오후 햇살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들이 너의 아이란다.
귓가에 들려온 소리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고. 후원하는 어린이의 편지가 도착했어요. 알람이 도착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편지함을 열어본다. 성장 사진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맑은 눈망울과 그림 편지에 담긴 형형색색 이야기를 읽고 나면 '사랑해 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자라나렴.' 속삭이듯 전해본다. 곁에 없지만 축복하고 그리워하면서 내게 다가온 소중한 어린이들과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만날 때
기쁨은 깊어진다.
아름다운 나의 삶,
고마움의 선물
내게 다가온 사랑이다.
세상의 어린이들을 품는다면,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바라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소중한 사랑이기에.
일 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검진 결과를 확인하는데 소견서 내용 중 눈에 확 띈 단어가 있었다. 그 단어는 바로 ‘암’이었다. 피하고 싶은 상황을 마주하며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의 삶은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까. 패션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좌충우돌 막내 디자이너의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고 디자인실 팀장으로 활동하다가 매출 규모 1000억 원 브랜드 실장으로 발탁되었던 당당하기만 했던 나였는데. 끊임없이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 보았다. 막내 디자이너 시절에 그토록 선망했던 ‘패션 브랜드 디자인 실장’ 목표를 이루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지 텅 빈 마음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