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조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몇 년 전,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다소 난해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통을 그린 이야기라 저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사실 요시노 겐자부로가 쓴 책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이 책을 평생 기억했고, 오랜 세월을 들여 애니메이션 작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도 소년이 어머니가 남긴 책을 밤새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 책이 요시노 겐자부로의 책입니다.
이 책은 중학생이 된 소년 코페르(본명 준이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외삼촌이 삶의 태도에 대해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각 에피소드에서 코페르는 관계, 가치관, 갈등 등 청소년기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를 외삼촌과 나누며, 진심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가치들을 하나씩 정리해 갑니다.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인물이 부모가 아니라 외삼촌이라는 점입니다. 아마 부모였다면 더 감정적으로 아이의 편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외삼촌이라는 설정 덕분에 이야기는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펼쳐지고, 코페르 역시 진심 어린 조언을 곱씹을 수 있었겠지요.
최근 들어 저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책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줄 수는 없지만, 내 안에 있던 신념들을 다시 꺼내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 같아 오랫동안 책장에 묵혀두었던 이 책의 첫 장을 다시 펼치게 되었습니다.
사물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인류는 우주의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어. 그와 마찬가지로 내 입장만 생각해서 사물을 판단한다면 세상의 참된 진실과는 끝내 마주할 수 없단다.
코페르는 외삼촌과 긴자에 있는 어느 백화점 옥상에 서서 도쿄시내를 바라보며 도시의 사람들이 물의 분자랑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조수처럼 밀려왔다가 빠져나가고 있으니까요. 외삼촌은 코페르가 이제 어른스러운 고민을 할 수 있음에 기뻐하며 코페르니쿠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코페르의 자각이 아주 중요한 뜻을 갖고 있음을 격려해 줍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에서 내가 보는 사물이 보편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많은데도 말이죠. 최근 어떤 사람과의 대화에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이 정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죠. 내 주변 모두가 김치를 먹는다고 해서, 김치가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훌륭해 보이는 사람과 훌륭한 사람
네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또는 세상이 인정하는 대로만 살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자립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중요한 건 세상의 눈이 아니라 네 눈이야. 네 눈이 무엇에서 사람의 훌륭한을 찾고 있는지, 그것을 네 영혼이 알고 있어야 한단다.
코페르는 친구 기타미는 조금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확실합니다. 어느 날 기타미는 반 친구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우라가와를 도와주면서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선생님께 불려 나가게 됩니다. 또 다른 반 친구인 우라가와는 조금 느리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몇몇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코페르는 정의로운 기타미와 더욱 친해지기로 합니다.
우리는 ‘훌륭해 보이는 사람’의 조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의 말이 절대적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러나 진짜 훌륭함이란 시기와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유행하는 가치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한테 중요한 가치일 것입니다.
가난에 대하여
우리도 가난할지라도 그 때문에 자신을 스스로 낮추지 않고, 또 부유하다고 해서 마치 위대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면서 살아가야 할 거야
코페르는 학교에 안 나오고 있는 우라가와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친구가 그다지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우라가와는 학교에서는 조금 느릴지 몰라도 그 어떤 사람보다 유부를 잘 튀기는 프로입니다.
코페르의 경험을 듣고 외삼촌은 세상에는 가난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하며, 그들을 ‘불쌍하다’고 여기기보다는 세상을 지탱하는 존재로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존중하라는 뜻이죠.
위대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영웅으로 또는 위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 가운데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은 인류가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된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업적 가운데서 가치 있는 업적을 꼽는다면 인류의 진보라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은 일뿐이다.
코페르는 친구들과 나폴레옹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의 영웅적 면모에 매료됩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나폴레옹의 성공뿐 아니라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생명과 빠르게 몰락한 말년까지 균형 있게 설명해 줍니다.
어릴 적 우리가 읽은 위인전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선 거의 말해주지 않습니다. 찬사가 가득하지만, 그 사람의 그림자까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최근 나폴레옹 역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전쟁 영웅이 아닌 학살자로서, 그가 남긴 유산은 다시 조명되고 있죠. 언젠가 그의 동상에도 콜럼버스처럼 붉은 페인트가 칠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잠시 멈추고 나에게 질문하기
이 책은 80년 전에 청소년에게 헌정된 책이지만,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외삼촌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뉴턴의 발견에 대한 기발한 추측, 그리스인이 만든 동양 최초의 불상, 그리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계’ 같은 주제들이 넘쳐납니다. 당연하게도 지금을 살아가는 성인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순간 모두가 똑같은 대기업을 열망하고 의사를 열망하며 강남 아파트를 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루쯤 시간을 내어, 우리 모두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조용히 자문하는 것이 필요한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하니까’라는 말은 잠시 미뤄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