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zer Moray
RAZER
레이저는 전체적으로 금액이 비싼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떤 카테고리의 제품을 만들든지간에 그 제품의 포지션이 가져야 할 확실한 요소를 알고 만드는 브랜드다. 컨셉에 진심이라는 얘기다. 레이저가 원래 음향기기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음, 마우스랑 키보드 만들던 애들이 뭘 알겠어' 라며 선입관을 갖고 있었는데 THX라는 거대 음향업체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나서는 깔끔하게 사라졌다.
제대로 된 게이밍 이어폰/헤드폰을 만들기 위해 거대 음향기기 업체를 인수해버린거다. 리얼 빠꾸없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컨셉에 진짜 진심이어서 레이저의 모든 음향기기 제품들은 '해양 생물' 이름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해양 생물들은 모든 의사 소통을 음파로 하며, 소리를 전달하는 중요 요소 중 매질이 공기보다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 레이저의 로고는 치명적인 독을 갖고 있으며 엄청난 반사신경을 갖고 있는 뱀이다. 레이저의 마우스는 모두 뱀 종류 이름을 하고 있다. 또한 레이저의 키보드는 모두 거미 이름을 하고 있으며, 게이밍 노트북은 휴대용 무기 (칼), 마우스 패드는 딱정벌레류의 이름을 하고 있다. 각 카테고리의 제품이 어떤 동물적 감각이 필요한지 녹여낸 이름으로 볼 수 있는데, 덕심이 뭔지 제대로 알고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THX
THX는 입체음향 전문 브랜드로 전세계 영화관에 널리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공인된 실력을 갖고 있다. 돌비 애트모스나 DTS 보다는 밸류가 살짝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내 전문 분야인 이어폰/헤드폰쪽에서 경험한 결과로는 THX의 입체음향 성능이 확실히 더 우위에 있다. 이어폰 자체에 입체음향을 켜고 끌 수 있는 기능은 없지만 기본적인 사운드 설계가 입체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어설프게 적용되는 입체음향은 사운드를 심각하게 뒤틀어버리기 때문에 기본 사운드 설계가 잘되어있는 쪽이 더 낫다.
Moray
모레이는 곰치라는 물고기로, 성깔이 더럽기로 유명하다. 레이저가 곰치의 어떤 속성을 보고 모델명으로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운드는 칼칼하지 않고 고운 편이다. 어떤 소리든지 다 잡아내는 귀신같은 해상력을 지니고 있고 초저음부터 초고음까지 재생할 수 있는 음역대가 매우 넓다. 각 음역대가 서로 과하지 않게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앞서 말한대로 소리의 입체감이 훌륭하며, 소리가 바깥쪽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소리의 높은 밀도, 집중력이 필요한 음악감상에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라이브 음원이나 ASMR에는 만족스러울 수 있다)
압도적인 편안함
게이밍 이어폰은 몸에 직접 걸치는 것으로서 제품을 착용한 순간부터 벗을 때까지 편안함이 유지되어야 한다. 또 게임 중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흥분과 빡침으로 인한 거친 움직임에도 정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고정력도 필요하다. 모레이는 내가 20년 넘게 귀에 직접 꽂아본 수백개의 이어폰 중에 베스트 3 안에 드는 미친 착용감을 갖고 있다. 역시 손에 직접 쥐는 마우스, 손끝 감각으로 타건해야 하는 키보드 전문인 게이밍 기어 전문 브랜드다운 섬세함을 보여준다.
마이크 없음
보통은 게이밍 이어셋이라고 해서 마이크가 포함되어 있지 않나요? 라고 의문을 가질텐데, 이어폰 케이블에 내장된 마이크의 성능은 처참해서 어지간하면 별도의 마이크를 쓰길 권장하기 때문에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내구성 측면에서도 그러한데, 만약 그 마이크에 볼륨 컨트롤러까지 달려있다면 내구성이 바닥을 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소리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동일한 볼륨으로 듣게 될 것이다.
게다가 레이저는 아주 훌륭한 성능을 갖고 있는 세이렌이라는 스탠딩 마이크를 별도로 판다. 선원들을 홀려 바다에 빠트릴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세이렌의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세이렌 마이크도 성능이 정말 좋다. 예전에 세이렌으로 녹음해서 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세이렌으로 녹음된 내 목소리에 반해버릴 지경이었다. (과장 조금 섞음)
199,000
게이밍 헤드셋은 종류가 꽤 많은데 비해 이어폰(이어셋)은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 고가의 이어폰을 게임용으로 쓰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운드의 지향점이 꽤나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용도에 맞는 제품을 쓰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제대로 된 게이밍 이어폰이 드물어서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게이밍 이어폰 카테고리로 한정하면 모레이의 금액은 꽤나 비싼 편일 것인데, 이 정도까지 제대로 만들어진 게이밍 이어폰을 여태 만나보지 못했고 금액을 더 들인다 해도 이보다 종합 평점이 높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임과 음악으로 점철된 내 모든 인생을 걸고, 모레이는 정말 제대로 만들어진 게이밍 이어폰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