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Audio tia Fourte
1. 64Audio
64오디오는 미국의 커스텀기반 프리미엄 이어폰 브랜드로, 소수 + 맞춤을 지향하는 커스텀 브랜드 특성상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편이다. 가장 저렴한 제품이 $799부터 가장 고가의 모델이 $3599인데, 한화로 바꿔본다면 가장 저렴한 제품도 100만원이 넘는다. 이들의 제품을 전자기기로 본다면 금액을 이해하기 어렵고, 예술품이라 간주하고 접근을 해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해가 쉽진 않겠지만)
64Audio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3개의 단어는 HEAR, FEEL, CREATE 이다. 듣고, 느끼고, 창조하는 것은 뒤로 갈수록 고등한 행위라는 단계적 구조를 지닌다. 여기서 창조는 오로지 인간만이 향유가능한 예술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들이 곧 예술가이며 그들이 만드는 것은 곧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늘 음향기기는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 예술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만큼 스스로를 예술가라 자청하는 브랜드가 나타나면 반갑고 응원한다.
2. FiR Audio
이 브랜드의 소개를 살펴 보면 '우리는 모두 가족이다', '바다를 건너 새로이 터를 잡았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순수한 미국 출신이 아닌 것임을 유추할 수 있고, 그만큼 시작이 만만찮았을게다. 64Audio의 설립자는 Vitaliy Belonozhko로, 그에겐 Bogdan Belonozhko와 Alex Belonozhko라는 동생들이 있었다. 당연히 64Audio의 시작은 세 형제가 합심해서 브랜드를 키워나갔을 것이다. 64Audio는 빠르게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여 프리미엄 이어폰 시장에서 한 자리를 꿰차는데 성공했다.
64Audio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 Bogdan과 Alex는 형님과 다른 뜻을 품어 새로이 브랜드를 만들었으니 이들이 FiR Audio다. 64오디오와 퍼오디오의 원류가 같고, 사실상 가족 회사의 서로 다른 브랜드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디자인이라든가 사용된 기술들, 타깃으로 하는 고객층이 꽤 유사하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기술의 이름은 다르게 표기되어 있으나 설명을 잘 읽어보면 거의 같은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과거에는 아예 기술명과 소개문구가 같았었다)
이때문에 퍼오디오는 64오디오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짭이라거나, 주요 기술과 디자인을 훔친 아류 브랜드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다. 퍼오디오 제품을 다수 접해본 내 입장에서는 '퍼오디오는 훌륭하다. 그런데 대체 64Audio는 얼마나 훌륭할 것인가?' 라며 이 만남의 성사,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3. tia Fourte
앞서 언급한 이 브랜드의 가장 고가 제품이 바로 티아 포르테다.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금액은 589만 9천원으로, 그간 한국에서 만나본 끝판왕 이어폰들의 금액대가 얼추 500만원 전후였으니 이 제품도 금액상으로는 당당히 끝판왕 이어폰(종결자) 대열에 합류한다.
tia는 tubeless in-ear audio의 준말로, 이 브랜드의 고유 기술이 적용된 이어폰 드라이버다. 보통의 BA 드라이버는 드라이버 한쪽 끝에 튜브를 붙여 노즐까지 소리를 전달한다. 이 튜브를 거치며 일부 왜곡되고 손실되는 음역대가 있다고 판단하여 아예 노즐 가까이 드라이버를 위치하고 튜브를 빼버린 것이 tia 시스템이다. 현재는 이 기술이 타 브랜드에도 범용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64오디오에서 최초로 적용하여 상용화시켰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기술이 되겠다.
Fourte는..... 아무리 검색해봐도 결과값이 나오질 않는다. 네이버, 각종 어학사전, 구글링을 검색해봐도 64Audio의 이 이어폰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단어 숫자 4를 의미하는 'Four'를 포함하고 있고, 이 제품의 소개 서두에 '단순한 4개 드라이버 하이브리드 이어폰이 아니다' 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이버 개수를 멋있게 표현한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이 브랜드의 모든 제품은 드라이버 개수를 모델명으로 하고 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4. tia Fourte (2)
그간 만나본 모든 끝판왕 이어폰 중에 티아 포르테는 가장 작고 아담하다. 또한 페이스 플레이트도 뭔가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낸다기 보다는 얌전한 편이다. 보통 미국 출신이라면 그들의 넘치는 자신감이 여러 방면으로 표출되기라도 하듯 뭐가 됐든 큼직큼직하며 화려한 것과 대조된다. 이러한 얌전한 디자인은 사운드에도 어느정도 반영이 되는 편인데, 결과적으로도 티아 포르테의 사운드는 내가 생각하는 미국스러운 사운드가 전혀 아니었다.
5. 종결자다운 성능과 독특한 음색
어떤 음향기기든지 사운드는 3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평가하게 된다. 음질, 음악성, 현장감(공간감). 사실 이 중에 하나만 특출나도 의미가 있는 제품이라 생각하지만 해당 카테고리의 끝판왕, 종결자라면 이 중에 하나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그 바람대로 티아 포르테는 이 중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
세가지 평가 요소 중에 가장 달성하기 쉽지만 가장 오버하기 쉬운 것은 음질이다. 음질은 뛰어날수록 듣기에는 불편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은 잘난 사람이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티아 포르테에는 투명한 베일 같은 것이 있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음악이 들리게 된다. 이 베일 덕분에 고유의 독특한 음색을 지닌다. 이런 거리감이 있어 소리가 대단히 선명한데도 귀에 부담스럽지 않고, 우아한 무게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신비한 매력까지 지녀 자꾸 듣고 싶게 하는 주문을 건다. 이것을 하나로 묘사한다면 아랍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무희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여성성이 특별히 강하지는 않다. 보통 음향기기를 남성적 사운드나 여성적 사운드로 나누어 설명을 한다. 남성적 사운드는 선이 굵고 저음이 강한 편이며, 웅장하고 힘찬 분위기가 서려있는 반면, 여성적 사운드는 선이 가늘고 고음이 강한 편이며, 여리고 하늘하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서려있다. 티아 포르테로 음악을 듣다 보면 어떤 곡에서는 남성적 면모가, 어떤 곡에서는 여성적 면모가 부각된다. 스케일이 아주 큰 일부 곡에서는 두 성향이 모두 관찰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이 이어폰은 기본적인 성능 자체가 매우 뛰어나며, 각 지표들이 치우짐 없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런 성향은 끝판왕급 제품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성향이긴 하다. 어떠한 관점에서도 감점당할 요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브랜드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끝판왕급 제품들은 소리가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 브랜드의 그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도 한다. 티아 포르테는 다른 경쟁 종결자 이어폰과 확실히 구별되는 독특한 음색과 매력을 지니고 있어 『64오디오』, 『티아 포르테』라는 강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6. 이어팁
티아 포르테에는 총 3종류의 이어팁이 제공된다. 구경이 작고 높이가 높은 실리콘 이어팁(중)은 스핀핏 브랜드의 것으로, 가장 표준적인 사운드를 재생하며 음악성과 현장감보다는 음질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다. 반면 구경이 넓고 높이가 낮은 실리콘팁(좌)은 음을 적당히 떨어트리며, 저음과 공간을 크게 확장하는 형태를 그린다. 끝판왕다운 무게감과 웅장함을 잘 드러내는 대편성 클래식과 영화음악에 추천할 수 있는 세팅이다.
마지막으로 폼팁(우)은 가장 어둡고 무거운 배경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폼팁이 내주어야 할 사운드를 구경이 넓고 높이가 낮은 실리콘팁(좌)가 재생하고 있기 때문에 폼팁은 설 자리가 없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이 이어폰 특유의 베일에 가려진 느낌이 폼팁의 먹먹한 특성과 결합하여 더욱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될 여지도 있어 추천하기 어렵다.
7. '이어폰을 단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다른 모든 이어폰이 본받아야 할 만큼의 성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제품이 아니면 안되는 강한 특색을 고루 지닌 끝판왕 이어폰이다. 2017년에 출시되어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이어폰을 최고로 꼽는 애호가들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64오디오 제품은 티아 포르테 하나만 접해봤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지만, 64오디오는 Belonozhko 가족의 원래 고향 성향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고, 퍼오디오는 좀 더 미국적인 성향이 강한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64오디오의 또다른 제품을 만나게 된다면, 형제 브랜드 퍼오디오와의 지향점과 차이점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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