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섬 우체국 집배원이 전하는 편지
88년 올림픽을 치른다고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꼬불꼬불 달리는 버스 창 너머 낮선 도로가 설레 이기도 두렵기도 하다. 울긋불긋 장미꽃들이 따뜻한 웃음으로 먼 길 온 나를 반겼다. 까무잡잡한 섬 소녀의 촌스러운 미소보따리를 창문 넘어 냅다 던진다. 얼마를 지났을까. 다시 낮선 여선생님 발걸음 뒤를 따라 멈춘 곳은 같은 반이 될 교실이다. 수줍음 가득안고 도시 동무들에게 인사를 건 냈다.
“욕지중학교에서 온 전학생 김채원 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인사한 허리가 체 펴지기도 전 쏟아지는 질문들이 교실 안을 꽉 채웠다.
욕지가 어디냐. 욕지 출신이면 욕을 잘하겠네. 어떻게 욕을 하냐?......
긴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당당함은 냅다 교탁 밑으로 숨겨야했다. 떨리는 모기 목소리만이 많은 시선들을 대적하느라 서있는 다리의 떨림은 점점 심해져갔다.
“알고자하는 욕망이 가득한 섬 욕지도! 그리고 친구들! 나 욕도 잘해.”
여기저기 낄낄대는 웃음소리는 그다지 섬 촌뜨기를 반기는 따뜻함이 아니었다.
욕지도는 알려지지 않은 관심도 없는 섬 이였다. 그 곳에서 태어나고 뭍에 발을 내딛는 도시 삶의 시작 이였다.
수많은 질문과 이유 속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재촉한 것도 도시 삶 이였다. 그 삶이 떠나왔던 섬으로 다시 유배 보낸 것이라고, 지금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유를 수없이 만들어 내고 있는 이곳은 욕지도다. 욕지도는 섬이다.
돌아온 고향에서 맞는 “섬 축제”일에 몰두한 하루는 애향심과 함께 찾아온 즐거운 하루의 연속 이였다.
다도해라 많은 섬들이 막아줄 것 같지만 최남단, 홀로 뚝 떨어져있는 외로운 나와 같은 섬 이였다. 옛 지명이 원삼도 라는 것도 욕지도, 상하노대, 연화도, 3개의 섬을 합쳐 멀리 있는 3개의 섬 ‘원삼도’라 불리어졌다. 행정구역 명명으로 근처에 있는 사량도와 합병하여 한때는 ‘원량’으로 지명된 흔적은 지금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의 이름이 원량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1만명이 거주하던 면적 14.5㎡ 아주 큰 섬 같은 작은 섬 욕지도는 지금 1200세대 2000명이 거주하는 통영을 대표하는 섬으로 칭해지지만 그렇게 감탄을 자아낼 만큼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설레임은 착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착각 속에 하루하루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나는, 어느 경지에 다 오른 것일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느끼는 것이 다 라고 나의 착각을 붙들어 매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 삼덕 항에서 32㎞ 뱃길로 1시간 시간이 소요되면 섬으로 도착이다.
600명이 넘는 중학교 시절 욕지도 섬으로 등교하던 그때는 먼 옛날이야기로 접어두어야 한다. 지금은 전교생20명의 중학교와 1개, 초등학교 1개만이 욕지도 미래를 지키고 있다.
면사무소, 보건소, 농협, 수협, 우체국, 파출소, 해경, 119소방서, 해군부대, 도서관, 목욕탕, 식당, 노래방이 있고, 주 수입원은 특산품인 욕지도 고구마, 고등어, 참치등을 키우는 수산업, 농업이다. 우체국 근무가 끝나면 고구마농사에 열연하는 나의 모습도 영락없는 욕지도 농사꾼이다.
청정지역 풍부한 플랑크톤, 사방팔방 불어 되는 미네랄 잔득 실은 바람은 한시도 작물들을 멈추어 있게 놓아주지 않는다. 모든 작물들이 아주 깊은 맛이 있는 이유다. 흥겨워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흔들어 되니 작물이나 사람도 어찌 건강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으랴.
족보를 들여다보니 고조부 5대조 조상들 선산은 모두 남해에 있었다. 10월이면 아버지가 몇 날이 걸려 남해까지 시제를 지내로 가셨다. 이런 저런 행사 넋두리를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어린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윗대 조상들이 남해 섬으로 유배를 오시어 자손들이 주위 섬으로 생활터전을 이동해간 것이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상하노대 섬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셨다. 나도 뭍으로 전학가기 전 기억들은 욕지도 섬에서의 기억밖에 없다.
한집에 5,6명씩 자식이 있던 그 시절,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뭍으로 뿔뿔이 흩어져 어떤 모습으로 각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연어처럼 다시 돌아갈 꿈을 안은 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