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섬 우체국 집배원이 전하는 편지
“특수지 상하노대 근무 지역이 어떤 곳인지 아시나요?”
우체국면접관이 웃으며 질문을 했다. 도시가 아닌 외딴 섬에서 특수지 집배원으로 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의도가 묻어난 말 이었다. 나는 어릴 적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자신 있게 답했다. 놀란 듯한 면접관은 오토바이 운전 여부와 상하노대까지 개인 선박으로 이동해야 되는 점을 되물었다. 반평생을 욕지도에서 산 내게 어렵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두미도 섬으로 가는 특수지 집배원의 개인 선박을 같이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면접 분위기는 잔잔한 바다처럼 흘러갔다. 업무에 관한 질문이 일사천리 지나가고 이제 청년보다 노인 비율이 높은 섬 특유의 비밀 업무 이야기가 나왔다.
“섬에 사는 노인들이 우편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부탁 할 텐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른 사람에게는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추가 업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욕지도에서 자란 내게는 섬은 고향이요, 그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의 부모님 이다. 자식 같은 마음으로 돕다 보면 오히려 위로 받고 용기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보다 멋진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진심이 담긴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는지 면접관은 싱긋 웃었다. 그렇게 나는 7월 1일부로 부산체신청 관할 통영우체국 소속 욕지우체국 상하노대 특수지섬 집배원이 되었다.
1912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일인의 금융과 우편환을 위해 원삼면 좌부랑께에 통영우체국 욕지도 우편소를 설치한 기록이 사진 속 건물은 흔적도 없이 마을 한복판 안내판에 의지하고 서 있었다.
1960년 무선전화 3회선을 개통하고, 1969년 우체국 전화교환업무를 할 정도였다는 것은 그 시절 이작은 어촌마을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다. 수산무역 중심지였음을 기록들이 함께 증명하고 있다. 1977년 좌부랑께 마을에서 옆 마을인 중촌166번으로 이전하였고, 중촌 166번지 우체국 시절은, 유치환님의 ‘행복’시처럼 집배원아저씨와의 첫사랑 기억이 나를 미소 짓게 했다. 2015년 지금의 중촌176번지로 개축이전 ,지금 우체국 건물이 있다. 이 곳 에서는 끝 사랑 집배원아저씨와 웃기고 울리는 나의 일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부산체신청 관할, 국정우체국과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로 나누어진다. 국정우체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우체국이다. 별정우체국은 1960년대 정부가 우체국 지을 돈이 없을 시절 사업의 일환으로, 1961년 개인이 건물과 시설 등을 갖추어 우체국을 설립하면 우체국국장으로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와 연금 제도이다.국장자리를 가업으로 승계 가능하게 했다. 대부분 읍. 면 지역 유지들이 자리를 차지했다한다.
우정사업본부가 민영화되어 시장논리에 의해 퇴출 될 때까지는 진정한 철 밥통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닐 것이다. 금수저의 부러움을 한몫하고 있다.
깊이 알아 갈수록 점점 머리가 아파지는 이유를 더 알고 싶지 않아 진다. 기분 탓 일까?
우편 취급소는 말 그대로 우편만 작게 취급하는 곳으로 국가, 개인 둘다 운영한다.
욕지도 우체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정우체국이다.
6급 이상 정식 사무공무원으로 부산체신청 발령 욕지도우체국 국장으로 1년~2년 근무이고, 우편담당, 금융담당, 3명의 내근 근무 직원과 욕지도 2개의 행정구역 정시 집배원 2명과 연화도 섬 특수지, 상하노대 섬 특수지, 두미도 섬 특수지 각각1명씩이다. 우체국에는 8명의 전체 직원들이 각기 다른 업무분장을 맡아 욕지도 섬 우체국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