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곱살 귀어 촌을 결심한 그곳은 욕지도다

3. 섬 우체국 집배원이 전하는 편지

by 채원present



도시 삶이 숨 막혀 도망치듯 여행 떠난 그곳은 여중생 모습으로 떠나온 그 섬 욕지도였다. 설명으로 부족한 이 따뜻하고 포근함이 나를 꼭 껴안았다. 스치는 바람의 향기가 지친 나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갯내음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게 거듭나는 순간이다. 슬며시 감은 눈가에 지어진 미소는 무엇을 결정할 만큼 깊은 주름을 보였다.

도시삶은 귀향을 결심한 나에게 아무것도 내어 주지 않았다.

미련, 아쉬움, 후회....... 따라 올 수 없는 조건만 허락했다.

도시삶을 버린다는 것은 맨발로 흙 마당 뛰노는 5 살배기 섬 머슴아가 되어도 좋으리만큼 기쁜 일인가. 막힌 가슴이 뻥 뚫려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도 잠시다. 다시 막힌 가슴을 밤 세 부여잡고 깜깜한 어둠속에 얼마를 헤매야 할지 모른다. 칭얼대는 어린아이 달래듯 내 마음 달래기를 여러 수백 번 반복했다.

내 가슴에도 봄날처럼 따뜻한 온기가 찾아오길 바라고 바랬다.

나는 14살 차이의 멋진 남자 아내였다. 멋진 남자는 아들 딸 두 명의 자식을 데리고 나와 결혼했다. 막내아들이 태어나자 3명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큰아이들과 함께 철이 들어갔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려야 했다. 그래야 이 아이들과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그 뜻에 미치지 못한 삶이 주는 혹독한 매질이 분명했다.

인생을 미친 듯이 살아 본적이 있는가?

그 목적이 누군가를 위해서 내 몸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의 2배를 항상 쏟아내어야 함은 누가 시켜서는 절대 불가능한 나의 독재와 같다.

막내아들이 대학생이 되던 날 이혼이라는 폭탄을 거실 한복판에 집어 던졌다. 멋진 남자의 아내자리를 내려놓았다. 구속이 아닌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어둠처럼 밀려오는 공포는 기억 속 지워버린 부모님의 그리움이 아니었다. 3명의 자식들 기억 속에 지워질 수 있는 엄마 자리였다.

유심히 나를 쳐다보았다. 어떤 공포 두려움보다 나는 앞으로만 가기로 했다.

‘나는 돌아가리라 내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향하리라 젊은 시절 수천 개의 돛대를 세우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늙어 구명보트에 구조되어 남몰래 닿더라도 귀향하리라.’

꿈에 그리던 신문기자로 세계를 누빈 뒤 자기가 태어난 욕지도로 귀향하는 김성우 선생님의 ‘돌아가는 배’에세이처럼 가슴가득 두려움을 안은 체 그리운 부모님들의 고향으로 나만의 멋진 귀향을 했다.

나를 반기는 것은 무성한 산천초목과 그리운 부모님들을 기억하는 섬마을 노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을 하고 있는 친구네 아버지, 어머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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