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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고양이, 주먹이

편의점 직원인가, 주인인가.

by 희서

녀석은 좀 독특하다. 슬쩍 곁을 내주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홱 돌아서 버리는 앙칼짐. 그 모습이 꼭 여느 도도한 아가씨를 닮아있다. 아니, 풍채를 생각하면, 위풍당당 장군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길묘생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터득한 비법일지도.


아파트 상가 1층, 남녀노소 방앗간 드나들 듯 오가는 작은 편의점. 그곳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앙칼진 밀당의 고수, 주먹이가 산다. 주먹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공부방 아이들 덕분이다.


"선생님, 주먹이 애교 엄청나요. 저만 보면 발라당 넘어가요. 크크."


'그런 귀요미가 상가 편의점에 산다니, 영접하러 가야지!' 잔뜩 기대하고 있던 찰나,


"선생님, 이거 보이세요?!" 한 아이가 손등을 내밀었다. 연약한 피부 위에 선명하게 남은 상처 하나.


"주먹이가요.. 문 닫을 때 꼬리가 끼였는데, 바로 저를 할퀴었어요."


울상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의 모습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거 애교 고양이 맞는 거냐고. 의견이 이렇게 엇갈리는 주먹이라니. 더 궁금해진 마음을 안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두둥. 주먹이는 없었다.


"날이 좋으면, 주먹이는 여기 없어요. 하루 종일 바깥에서 놀아요." 사장님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네 고양이들이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 보면 하나둘 안 보이거든요. 2년을 넘기기 힘든데, 이 녀석은 벌써 4년째 저랑 있어요. 허허."


편의점 사장님의 웃음 너머로, 주먹이에 대한 애정이 폴폴 피어올랐다. 주먹이의 생활을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온기를 묻힌 채로. 그렇게 몇 번을 헛걸음한 끝에, 드디어 주먹이와 조우했다. 아주 요상한 자세로.


계산은 했냐?

카운터 테이블 위에 떡 하니 앉은 주먹이. '왔냐? 계산하고 가라.'는 눈빛을 날리는 그 포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툭툭 흘러넘치는 카리스마. 이 녀석, 아무래도 이 가게 진짜 사장 같다.


날이 쌀쌀해지면, 주먹이는 자연스럽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다. 카운터를 지키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심심할 땐 진열대 물건을 쿡쿡 건드려보며 시간을 보낸다. 편의점 직원인지. 주인인지. 어쨌든 이곳의 정수는 이 녀석이 쥐고 있는 듯하다.


"주먹이가 물건 망가뜨리면 손해잖아요?" 슬쩍 물어봤더니, 사장님은 또 ‘허허’ 웃었다.


"착한 고양이예요. 장난 좀 치긴 해도,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토실토실한 주먹이는 눈치 따윈 모른다. 진열대도 쑤시고, 카운터도 차지하고, 때론 손님 장바구니를 구경할 때도 있다. 그 모든 기행이 가능했던 건, 사장님의 깊고도 넉넉한 애정 덕분이리라. 그 사랑은 어쩐지, 주먹이 체중과도 비례하는 듯하다.


다정한 듯 앙칼진 듯, 조금은 밀고 조금은 당기며 살아가는 주먹이의 묘생. 편의점 사장님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는 한, 주먹이는 오늘도 이 동네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주먹이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진, 조용하고 여린 한 아이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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