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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cey J Apr 27. 2024

몸을 통해 마음 다스리기

3일 단식과 채식 지향의 삶

어제로 3일 단식이 끝났다.

4일째 아침인 지금 놀랍게도 현재의 상태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

그래서 마테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몸과 음식에 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담담히 적어본다.

24시간 단식도 해보지 않은 내가 3일 단식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전통 불교식 위빠사나를 경험하고 싶은 사심(?)으로 시작된 스님과의 인연이 불교 공부로 이어져 크나큰 도움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나는 무엇이든 혼자하는 게 좋은 성향이라 자의적으로 모임에 간다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쌓인 경험과 시행착오, 많은 질문과 의심이 티끌보다 작은 점이 되어버리는, 그만큼 방대하고 너그러운 가르침을 만나니 발길이 저절로 향했다. 리트릿이 있는 날을 비롯, 한 달에 4일은 아라한(깨달음을 성취한 자)의 삶을 따르기 위해 8계를 지킨다. 그 중 하나는 불필요한 시간에 먹지 않는 것이다. 정오부터 금식하여 다음 날 아침까지 물과 차만 마실 수 있다.


8계에는 오후 금식을 비롯 춤과 노래를 듣거나 연주하지 않고 몸을 단장하지 않으며 사치스러운 침상을 쓰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한 마디로 몸과 마음에 들어오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제거하여 깨끗하고 경건히 다스리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다음 날 아침까지 금식하며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치우고, 산책과 명상으로 느린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새벽 명상에서 변화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 중에 불필요한 정보에 노출되어 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몸에 들어가는 음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과 마음을 깨끗히 비워야 텅빈 고요함으로 수월하게 향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도.






나 자신의 아직 제거되지 않은 번뇌와 습관들이 점점 더 수면 위로 드러나는 날들...

몸에 습관이 깊이 배어 있는 만큼 사고방식의 패턴, 마음과 정신의 작용, 감정도 그러했다. 그것은 한 개인을 만드는 개성이지만 전체에 대한 이해 없이 그것들이 전부라고 인식하면 괴로움과 번뇌를 벗어날 수 없다. 정신적 영역은 쉽게 바뀌기 어렵기 때문에 마치 젖은 옷을 따사로운 볕에 말리듯 지속적으로 알아차림이라는 빛을 비춤으로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몸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람에 따라 많이 먹거나, 식욕이 아예 사라져 먹지 않는 모습을 본다. 흔히 마음이 힘들 때 술을 마시거나 극도로 매운 음식을 찾는 것처럼 정신적인 힘듦을 몸을 통해 해소하려 한다. 그만큼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다. 우리의 정신이 맑고 고요하지 않다면 식습관 또한 무의식중에 그렇게 흘러가기 쉽다. 내면의 결핍감이나 죄책감, 우울을 달래기 위해 배고프지 않은데 습관적으로 해로운 음식을 찾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연초에 힘든 일을 한 차례 겪으며 감정에 휘말리기보다 스스로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고자 했으나 이미 받은 마음의 상처는 어쩔 수 없었다. 그 영향은 조금씩 틀어지는 식습관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간단한 아침 겸 점심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체질 또한 다르다. 나의 타고난 체질은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해서 평소 간단한 채식 식사를 한다. 그렇다고 엄격한 비건은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고기를 먹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제철 채소와 과일, 건강한 탄수화물과 식물성 단백질로 직접 만든 식사를 하루 두 끼 먹은지 오래 되었다.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무언가 몹시 먹고 싶어서 먼 길을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어릴 때부터 마른 체형이고 체중이 늘면 컨디션이 저하되는 편이다.


반면 달콤한 음식에 대한 욕구가 있다. 특히 달콤한 디저트에 약해서 스트레스 받은 날 커다란 초콜렛바와 레드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기분을 달래곤 했다. 자동차에도, 사무실 책상에도 캔디와 초콜렛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습관적으로 달콤한 맛으로 심리적 허기를 달랬다. 평소 식습관 또한 알아차림하고 절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괜히 베이커리에 가서 쿠키를 사고, 마트에서 디저트 코너를 서성이는 나를 자주 보았다. 한번 무너지면 고삐가 풀리듯이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단 것에 대한 열망은 계속 되었다. 진짜 배고픔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욕구가 생길 때 정신력으로 다스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올라오는 힘에 대항해서 막아내는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다. 그 과정에서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

결국엔 이롭지 않은 번뇌이다. 몸이 무언가 말해주고 있었다.   






억누르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몸과 정신에 전환점, 디톡스가 필요한 시점같았다. 20시간 단식만으로 얻었던 가뿐한 컨디션을 떠올리며 하루 단식을 해보기로 했다. 단식을 하는 동안 배고픔과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

미세하게 몸에서 보내는 신호와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깊숙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무조건 욕구를 누르지 않고 번뇌를 없애보자는 다짐으로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여러가지가 보였다.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의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강하게 들러붙었던 접착제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무엇과도 다투고 있지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몸이 마음을 반영하고, 마음은 몸을 통해 변화될 수 있으니 눈에 보이는 몸, 특히 음식을 절제함으로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음은 확실하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도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채식을 해야 순수하고 조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레시피 아이디어를 얻는 Ottolenghi의 책들


첫째 날 배고픈 느낌을 몇 차례 겪고 익숙해져서인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맑고 가벼운 정신이 좋아서 하루 더 연장, 가능하면 3일까지 단식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는 습관만큼은 어쩔 수 없어서 오트밀크 라떼를 한 잔 마셨다. 그 외에는 생수와 마테차를 마셨다.

두번째 날 저녁, 갑자기 강한 허기짐이 느껴졌으나 아침의 좋았던 컨디션을 떠올리며 무사히 흘려보냈다.

셋째 날 아침은 정신이 더욱 맑아짐을 느꼈다. 명상 시에 미세한 알아차림이 평소보다 잘되었다. 단식으로 몸과 마음에 휴식과 동시에 정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우려했던 대로 짜증스럽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대신 놀랍도록 차분하고 고요한 상태가 찾아왔다. 힘이 없고 무기력해서 가만히 있는 것과 달리 생동감을 품은 차분함이었다. 체중이 약간 준 것 외에 신체적인 큰 변화는 없었다. 아침에 라떼로 필요한 영양소를 충당해서인지 두통이나 현기증도 전혀 없었다. 평소 끼니를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 요리해서 먹고 치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사람이 3일 정도 먹지 않아도 아무 일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훨씬 여유로웠다. 여러 의미로 효과적인 디톡스임이 분명했다.


텃밭에서 키우는 허브들


마음 공부에서 요가나 운동, 명상은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주며 알아차림, 즉 마인드풀한 삶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듯 몸과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예를 들면 술과 기름진 고기, 사치스러운 음식을 즐기면서 요가의 목적을 성취하긴 어려울 것이기에 비교적 파악하기 쉬운 식습관을 돌아보며 현재 나의 상태를 진단하고 한번쯤 단식을 통해 내면의 고요함을 만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도 일주일에 한 번은 24시간 단식을 하고 싶다. 적어도 정오 이후 단식을 하는 불교의 8계를 지켜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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