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문장
어디에서 났는지
거미 새끼가,
먼지 더미 속에서
내 낡은 문장들을 헤치고
잊혀진 공간을 등에 이고
굴러가듯이 분주한 걸음을 하곤.
제발로 나와놓곤 왜 다시 도망가려고만 할까.
서둘러 숨어들지만 말고
내게 투명한 그물같은 실을 좀 빌려준다면,
네가 자주 그러하듯 나는
공기중을 부유하는 내 생각들을 거기다가 차례대로 걸어놓고
언젠가, 더 이상 무언가를 떠올리기에도 지칠 무렵이 되면
그것들을 하나씩 떼어다가 씹어 삼킬텐데.
잘- 익은 열매처럼 아주아주 둥글고 부드러운 단어부터 골라서.
그러나, 암만 따뜻한 손을 내밀어보아도 너는 결국에
녹인 설탕을 쭉- 늘린 듯 끈끈한 거미줄을 내게 쥐어주는 대신
먼지 속 컴컴한 구석을 찾아 다시 들어가 버리겠지만,
어쨌든 나는 거미와 함께 이 글을 써내었다고 말할밖에.
다음번에 또 마음이 바뀌면, 그때 나와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날 적에는, 네 등에 붙은 먼지를 떼어주고
그 자리에 내 단어 몇 개를 얹어 되돌려 보내줄게.
가볍고 사소해 보이지만,
작디작은 너를 짓누르지 않을만큼
둥글고 부드러운 것만 골라서.
어둠 속으로 가지고 들어갔을 때에 네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만큼
은은한 잔광만을 기분좋게 내뿜는 것들로만 골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