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런던, 빠져든 사랑
12월의 끝자락, 거칠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해치며 나는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인천 공항 안으로 바삐 들어섰다.
공항 안에 들어서자, 나는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빠져들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서로 짐을 끌면서 이리저리 서성였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분주한 사람들이 온기가 공항 안을 채웠다.
공항 안은 실내지만, 마치 세상의 중심처럼 보였다. 여기서부터 새로 쓰겠다. 나의 인생 제2막을…
나는 마침내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듯한 설렘을 간직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를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를 마주했다.
그 순간, 각자 자리를 찾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주위에 승객 들은 내 시야에서 모두 지워졌다. 오롯이 그 남자만이 내 눈에 선명했다.
큰 키에 파란 눈은 차가운 바다의 파도처럼 깊어 보였다. 그의 입술은 마치 붉은 와인을 머금은 듯하였고, 흑발은 그의 야성적인 미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그의 얼굴은 공예품 같은 완벽한 조화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본 얼굴 중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을 때, 그는 나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런던여행이 내 로또였나 봐.’
그는 털썩 내 옆자리에 앉았다.
마침내, 비행기는 이륙했다.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그의 한쪽 팔은 마치 산들바람처럼 내 팔을 스쳤다. 이륙하는 내내, 그의 살결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 때문에 나의 심장은 떨리는 나뭇잎처럼 쿵쾅쿵쾅 뛰었다.
그는 야속할 정도로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5시간의 비행 동안, 그는 좌석 옆 창문을 배게 삼아 고개를 떨군 채 깊은 잠을 잤다.
나는 가끔씩 그의 잠든 모습을 곁눈질하며 바라보았다. 그의 긴 속눈썹은 마치 잔잔한 호수 물결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에게 쏠려 있는 나의 온 감각을 애써 무시하기 위해, 가방 속에서 단어장을 꺼냈다.
추리 장르의 영어 원서들을 읽으며, 모르는 단어들을 틈틈이 나만의 단어장에 기록해 두었다.
단어들을 한참 외우고 있을 때, 그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곁눈질하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몇 차례 느껴졌다.
“근데, 저기요. 그냥 궁금해서요. 이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뭐예요? 살인, 치정, 위법, 암시장…. 이 단어들은 왜 여기에 적어둔 거죠?”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하였다. 그 소리에 홀린 듯 나는 대답을 잃은 채 한참 동안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에요. 그냥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던 중이었어요.”라며 과하게 손사래 치는 내 모습이 참 어이없었나 보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그를 따라 활짝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은 비행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다.
마치 소개팅 같았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강박 따위 없었다.
난 계속해서 뛰는 내 심장이 쑥스러워서 대화 내내 헛기침을 하였지만, 적어도 그는 편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