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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강 Oct 31. 2024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23> 2024. 10. 31.(목)

어제처럼 손녀딸이 벌써 일어나 있지 않을까 조금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딸네 집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다행히 손녀딸은 제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오늘은 사위가 일찍 퇴근해서 손녀딸을 하원시키겠다고 한다. 손녀딸은 제 엄마나 아빠가 어린이집으로 자기를 데리러 오는 좋아한다. 아빠가 데리러 올 때에는, 손녀딸이 '멋진 빠방이'라고 부르는 '디트로네'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또 다른 이유로 아빠가 데리러 오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점심때 부여에 사는 친구 부부와 공주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손녀딸을 하원시키지 않아도 돼서 한결 마음이 여유롭다.


  일곱 시 좀 넘어 아내는 손녀딸 옆에 가 누웠다. 그러면 손녀딸이 좀 더 잠을 푹 자기 때문이다. 나는 거실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잠결에 어렴풋이 발소리가 콩콩콩 들려 눈을 떠 보니, 손녀딸이 최애 애착 인형 보노를 끌어안고 거실로 나와 매트 위에 엎드리더니 보노 꼬리를 쪽쪽 빤다. 시계는 8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손녀딸이 추울까 봐, 내 패딩으로 감싸주며 "할아버지가 아가처럼 안아줄까?"하고 물었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손녀딸 머리를 내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손녀딸 허벅지 아래를 받쳐 내 무릎 위에 뉘었다. 이게 '아가처럼' 안아주는 것이다. 손녀딸을 꼭 안아주며, "순돌아, 오늘은 아빠가 너 하원시키러 간대."라고 말하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냐고 물었다. 언젠가 아빠가 하원시키러 간다고 했을 때, 손녀딸이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고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손녀딸은 "비밀로 할 거야."라고 한다. 왜 비밀로 하느냐고 물었다. 손녀딸은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응, 비밀은, 비밀은 비밀이니까."라고 대답했다.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딱히 생각나는 이유가 없는 듯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물어보니까, 무슨 말로든 대답을 하기는 하는 우리 손녀딸이다. 


  내 품에 안긴 손녀딸이 좀 힘이 없다. 콜록콜록 기침도 종종 한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병원에 들러야 할 듯하다. 그러는 사이 아내가 일어나서 손녀딸 아침밥을 준비해 주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이번에도 영어 버전 캐치 티니핑이다) 아침밥을 먹이는데, 평소에 비해 먹는 게 영 시원치 않다. 소고기 뭇국에 만 밥 대여섯 숟갈을 먹더니 그만 먹겠단다. 그래도 사과와 배 썰어 놓은 것은 거의 다 먹었다.


  오늘은 핼러윈 데이라 어린이집에서 가능하면 핼러윈 복장을 입고 오라고 했다. 딸내미가 어제 미리 오늘 입고 갈 옷을 골라 놓았다. 고양이가 그려진 검은색 맨투맨 티셔츠, 어두운 색상의 치마, 그리고 반짝반짝하는 망토다. 손녀딸이 검은색 옷을 입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핼러윈이니 검은색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옷을 다 입고 어린이집에 가려고 신발을 신으려다 말고 손녀딸이 뭐라고 종알거린다. 현관에는 평소 손녀딸이 즐겨 신는 빨간색 구두와 노란색 구두가 있었다. 손녀딸은 그 신발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뭐 좀 더 무서워 보이는 신발은 없나?"라고 종알거리며 신발장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은색 구두를 꺼내더니 "그래, 이게 좀 더 무섭겠다."라며 은색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은색 구두가 빨간색이나 노란색 구두보다 왜 더 무서워 보이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손녀딸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손녀딸이 은색 구두를 신고 흡족해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로 향해 가던 손녀딸이 갑자기 반짝반짝 망토를 벗겠다고 한다. 왜 망토를 벗으려고 하냐고 물으니, 뭐라고 종알종알 대답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재차 망토를 벗으려는 이유를 묻고 손녀딸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았다. "그러면 고양이가 안 보이잖아." 손녀딸의 대답이었다. 손녀딸은, 검은색 맨투밴 티셔츠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고양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망토를 입으면 그 고양이가 가려져 잘 보이지 않으니, 그게 싫었던 것이다. 손녀딸이 추울까 봐, 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손녀딸이 원하는 일이니, 망토를 벗기고 차에 태웠다.


  병원에 들러 진료를 마치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거의 열 시가 다 되었다. 망토를 입지 않은 채 어린이집 현관 안으로 들어가려던 손녀딸이, 망토를 입고 아이들을 맞이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보았다. 내가, "순돌아 망토 입고 들어갈까?"라고 물었더니 손녀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망토를 입혔다. 그런 다음 최대한 망토 앞자락을 젖혀서 고양이 그림이 보이게 했다. 물론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곧 망토 앞자락이 고양이 그림을 가릴 테지만 일단 고양이 그림이 보이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손녀딸은 선생님 손을 잡고 별말 없이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사위가 손녀딸을 하원시키기로 해서 나와 아내의 오후는 매우 여유로웠다. 친구 부부와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다음, 다이소에 들러 천천히 쇼핑을 하고(물론 쇼핑은 아내만 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손녀딸이 핼러윈을 재미있게 보냈기를, 또 손녀딸 감기가 좀 나아졌기를 매우 간절하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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