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인지를 물으면,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라 대답하기 곤란할 성싶다. 교사의 범위를 일반계 고등학교로 한정하고 선택지를 제시하면 한결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의 교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1. 업무 처리를 잘하는 교사 2. 진학 지도를 잘하는 교사
3. 생활 지도를 잘하는 교사 4. 수업을 잘하는 교사
교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물으면 4번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재판을 잘하는 판사, 기사를 잘 쓰는 기자, 수사를 잘하는 경찰, 진료를 잘하는 의사가 훌륭하듯, 교사라면 마땅히 수업을 잘해야 할 테니 말이다.
똑같은 물음을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던지면 어떨까? 교사들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라고 답하는 고등학교 교사들의 비율이, 교사가 아닌 사람의 답과 견주어 볼 때, 현저하게 낮으리라는 점이다. 30년 넘은 나의 일반계 고등학교 근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추측이다.
1989년에 교직에 발을 들여 2024년에 퇴직하면서 다섯 군데의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했는데 그 어느 학교에서도 '수업에 소홀하지 않도록 하라.'거나 '수업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백 번 양보해서, 교사에게 '수업'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당연히 스스로 알아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디 그런가. 아무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어떤 대상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을 터이다.
처음 근무한 학교에서의 일을 잊을 수 없다. 지방 읍 소재지에 있는 소규모 일반계 고등학교였는데 교감이 신규 교사들을 모아 놓고 힘주어 한 말은 '업무 처리를 잘하라.'였다. 특히 '공문 보고 기일을 놓치지 말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수업'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수업하다 말고 나와 공문을 처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첫 학교에서의 근무 연한을 다 채우고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지방 소도시 비평준화 지역의 소위 명문고였다. 그 학교는 진학 지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명문 대학 합격자 수'에, 그것도 '서울대' 합격자 수에 목을 맸다고 해야 마땅하다. 서울대 합격자가 한 명도 없는 해는 초상집이 되었다가 서울대 합격자 수가 여러 명이 나온 해는, 몇 년 만에 대풍을 맞은 농부의 집처럼 흥성거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 학교 역시 '수업'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수업을 어떻게 하든 서울대 합격자를 여러 명 배출하면, 그만이었다. 업무 처리를 소홀히 했다고 교감에게 혼이 나는 교사를 가끔 보기는 했지만, 수업을 소홀히 했다가 질책을 받는 교사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0년 대에 들어서면서 살짝 변화가 감지되었다. '수업'에 관한 이야기가 슬쩍슬쩍 들려오기 시작했다. 주로 강의식 일제 수업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학생 활동 중심 수업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수업에 관한 교사 연수에서나 또는 각종 책자에서나 듣고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교사 연수를 듣고 각종 책자를 통해 학생 활동 중심 수업에 대해 혼자 공부했다. 몇 년을 준비한 끝에,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학생 활동 중심 수업을 시작해서 2024년 퇴직할 때까지 계속했다. 내가 학생 활동 중심 수업을 한다고 하자, 주변 동료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염려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과 기존의 방법으로 배운 학생들의 학교 정기고사 평균점이 비슷했다. 학교 관리자들(교장, 교감)은 여전히 수업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내 방식대로 수업을 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퇴직할 때까지 학생 활동 중심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았다. 정기고사 성적은 떨어지지 않고 수업 중의 학생 활동이 학교생활기록부 특기사항에 풍성하게 기록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충분해진다.
생각해 보면 매우 놀랍지 않은가? 학교에서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그토록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학교가 무엇하는 곳인지를 묻는다면, 대개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나 학생이 무언가를 배우는 곳이라고 답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학교는 수업을 하는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학교를 '수업'과 떼놓고 생각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30년 넘게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수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현재 고등학교 수가 2,300여 개쯤 된다고 하니 내가 겪은 일이,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지역의 다섯 개 고등학교에만 국한한 일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 등에서 접하는, 현직 교사가 쓴 것으로 짐작되는 여러 편의 글에서도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나의 바람은 매우 헛된 일일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