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직을 해서 악명 높은 9호선을 타고판교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집에 오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 특히 출근길의 9호선은 어깨 밑으로 가방끈이 흘러내려도 추켜올릴 수도 없을 만큼 혼잡해서 나는 보통 휴대폰조차 보지 않고 멍하니 서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그런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원래 출퇴근 시간에 이북리더기를 가지고 독서를 조금씩이라도 하려고 계획했던 게 잘 지켜지지 않아서 아쉽다.
출퇴근 길에 에너지를 전부 뺏겨서 그런지 점점 성격도 나빠지고 있다. 화날 일도 아닌데 화가 나고 거슬릴 것도 아닌데 무척 거슬려서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체력이 부족할 때 뭔가 결론 내리거나 결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솔직히 내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 마음이 꼬이는 게 느껴지고, 또 그런 내가 싫은 악순환의 시작. 2024년 목표를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기'로 정했는데 연말부터 위태롭다. 그래도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겠지!
나는 실제로 많은 것들을 사랑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명받는다. 나는 '사람'이 너무 흥미롭고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점이 무척 재밌다. 누구는 반숙을 좋아하고, 누구는 완숙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오이 냄새만 맡아도 치를 떨고, 어떤 사람은 생오이를 통째로 들고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정말 재밌어.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사람들의 호불호 주머니가 채워지게 된 과정도 괜히 궁금해진다. 꽉 들어찬 9호선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도비는 떠납니다!
갑자기 내가 이전 회사에 남긴 퇴사 인사가 생각이 났다. 매일이 정말 대국이구나. 지치는 날이 반복돼도 결국에는 이기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구나!(이 글을 읽는 분들도 무운을 빕니다.) 법륜스님의 말씀도 생각이 나는 대목이다. 왜 사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탐구가 아니라고,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라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는 문제일 뿐. 내일은 무슨 생각을 하며 9호선에 우뚝 서있을지 고민하다가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