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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국 Mar 28. 2023

트러커의 오디오북 : 찌질함에 대해


조수석에 탄 사람 : 도스토옙스키 
들려준 이야기 : 지하로부터의 수기

 원래 이 형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죄와 벌'을 읽고 싶었으나, 베개 만한 두께에 심지어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고 우선 이 책으로 합의를 봤다.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재미있으면  그 추진력으로 죄와 벌도 도전해 봐야지 싶었다.



어디서 본 적 있어. 거울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곧 죄와 벌도 읽을 것 같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재미는 쪼다 같은 주인공의 심리를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묘사하는 데에 있는데, 이 책의 첫인상은 영화에서 나올 법한... 쪼다, 너드 컨셉의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의 모습이 조금씩 비치어 보이기 시작한다. 즉, '어휴, 얘 왜 이렇게 찌질해?'하다가 '이거 약간 난데?'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물론 몇몇 독자는 '난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도스토옙스키 형님이 의도적으로 조롱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응당 한 번쯤 그랬을 법한 인간의 짠내 나는 심보를 지독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주인공이 피해의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헛소리를 해댈 때마다 읽는 독자가 먼저 '제발 그만해'를 외치게 되는데, 그것은 분명 스스로의 모습이 떠올라서일 것이다.



내 맘은 지금 지하인가 지상인가

 결말이 기억 남는다거나 문장이 뇌리에 박힌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삐뚤어진 시야로 상황을 묘사하는 인물의 말을 듣노라면 그 불평에 나도 모르게 심취하게 된다. 납득이 된다. 그 억지스러움이. 그 이유에서 인지 책에서 말하는 지하는 물리적인 지하일 뿐만 아니라 본인의 마음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모두 지금은 나쁘게 생각하면 한없이 나쁘고 좋게 생각하면 이보다 좋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막상 짤리면 갈 데도 없으면서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혀 위에 얹고 일을 하고, 진짜 대형사고를 쳐서 곧 짤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오면 왜 그랬지, 어떡하지 라는 후회가 눈앞을 가린다. 

 어젯밤 내뱉은 '트럭을 그만 몰겠다'라는 내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저 기분 나쁨에서 나오는, 상한 마음에서 나오는, 지하에서 나온 나의 푸념이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그만둔다는 것을 무조건 지하에서 나온 약하고 나쁜 마음이니 고쳐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다만 나의 결정이 지하로부터가 아니라 가장 또렷하고 맑은 이성에서 나오길 바랄 뿐이다. 




주인공이 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을 들으며 우중충한 국도를 달릴 때, 

분위기와 맞물려서인지 그 내용이 머릿속에 더 잘 들어왔다.

피멍 투성이인 거리의 여자들과 우악스럽기 그지없는 마부들을 향한 주인공의 시선,

경멸하면서도 애정 어린 그 말투는...

분명 그들 어딘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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