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마의 처소는 찬바람만 맴돌았다. 마마는 이전의 공주마마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이 그녀에게서 물러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강인한 여인이었으니까. 1여 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그녀의 영혼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떠오르지 못했다. 카이두 장군의 주검을 끌어안았던 그날, 그녀의 모든 것이 그곳에 멈춰 섰다.
공주마마는 텅 빈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일이 잦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곤히 하시는지, 상 위에 올린 식사는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대로 식어갔다. 따스하던 국물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도 마마는 꿈쩍하지 않았다. 겨우 나의 간절한 청에 수저를 들면, 맛을 느끼는 감각이라곤 없는 듯, 기계적으로 한술 두 술 넘길 뿐이었다. 마마의 눈빛은 상 위의 음식이 아니라 저 멀리,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해 있었다.
밤마다 잠을 쫓는 악몽과 씨름하여 마마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었다. 자스민 차가 주는 각성은 이제 마마를 더 지독한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아침마다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머리칼을 매만져 드릴 때도 인형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한 번도 내 얼굴을 마주 보거나, 작은 몸짓 하나 건네지 않았다. 어떠한 바람도, 요구도 없는, 영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듯한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불현듯 마마의 해맑던 웃음소리가 귓가에 아련히 맴돌 때면,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내게 환하게 웃으시던 마마의 그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전하께서 공주마마를 이따금씩 찾아왔으나, 외로운 싸움을 홀로 견뎌내고 있기에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원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건만, 고려의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복구하기는커녕, 끊임없이 기득권과 고군분투해야 했으니까.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후사에 대한 압박이 공주마마를 더욱더 옥죄어 왔다. 마마는 그럴 때마다 혼자서 읊조렸다.
“세 개의 강을 건너고, 두 개의 태양을 섬기며, 하나의 달을 잃으리라.”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이내 공주마마는 말을 이었다.
“설희야, 내게 달은 하나라 그랬어. 두 개의 달은 없으니 명심하라고 했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느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공주마마는 수없이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의 시선은 늘 비어 있는 왕후의 자리로 향했다. 원나라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거둔 승리가 내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 나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매 순간 상기시켜야 했다. 승리의 대가는 참으로 혹독했다. 그녀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 놓았으니까. 이따금씩 귀에서 울리는 병사들의 환호는 더이상 승리의 함성으로 들리지 않았다. 허무의 절규처럼 내 귀에 파고들 뿐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아무도 모르게 왕후의 처소로 향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등불을 벗 삼아,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녀가 스러져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다. 나는 그녀의 부서진 영혼을 다시 불러올 수 없었다. 그런 나의 무력함에 치가 떨렸다. 이토록 비참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영혼은 대체 어디로 침잠해 버렸단 말인가?”
연경에서 그토록 생기 넘치고 총명하게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 없이 멀어져 있었다. 가끔 내게 미소 지었으나, 그 미소는 막 피어오른 연기처럼 사그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사무친 슬픔과 위태로움만이 남았다.
궁궐의 대신들은 그녀의 회복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의 눈은 오직 하나만을 향했다.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끈질긴 목소리들이 궁을 뒤흔들었다.
"후사! 후사! 후사!"
그녀가 첫 아이를 잃었을 때도 그랬듯, 그들은 끊임없이 후사를 거론하며 그녀를 짓눌렀다. 나는 그들을 막아서지 못했다. 왕실의 후사라는 것은 왕으로서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운명은 기구했다. 나의 왕후는 그렇게 두 번째 아이를 품게 되었다. 회복되지 않은 그녀의 몸은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어의들은 끊임없이 우려를 표했으나, 나는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안고 왕후궁을 거닐던 그녀의 행복한 발걸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환하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과거의 지독한 슬픔 또한 잊히리라. 그 모든 상처가 아이의 생명력 앞에서 기적처럼 아물 것이라고, 나의 왕후에게도 드디어 진정한 안식과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와 나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내내 고통에 시달리던 몸은 만삭까지 버티지 못하고 7개월 만에 진통이 시작되었다. 나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마, 제발 정신을... 힘을 내십시오!"
방 안은 피비린내와 절규로 뒤덮였다. 지독한 진통 속에서 그녀는 결국 의식을 잃어갔다. 그녀와 함께 뱃속의 아이마저 그 품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나는 무력한 울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평화는 죽음이었을까?
내게 명분을 주었던 여인은, 결국 아이까지 안겨 주려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와 고려의 후사를 위해, 끝내 자신마저 태워버렸다. 나는 어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녀의 이 고귀한 희생과, 나의 지독한 미안함을, 도대체 어찌 갚아야 한단 말인가?
“그대는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났나 봅니다. 그래서 이 생이 몹시도 버거웠습니까? 어떤 생명도 쉬이 여기지 않는 그런 세상이 어디 있습디까? 있다면, 꼭 다음 생은 그곳에 태어나 어떤 번뇌도 가지지 말고 웃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달, 만물이 얼어붙는 그 차가운 축월에 태어나, 기어이 다시 그 축월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오늘도 해가 너무나도 짧았다. 온 세상을 얼려버릴 듯 시리고 어두운 날, 그녀는 고려의 별이 되어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가 카이두 장군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던 그 처절한 비명. 듣는 이의 영혼마저 찢어놓을 듯한 절규는, 그녀의 사무친 마음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심장에 쓰라리게 다가왔다. 피 묻은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하던 그날, 나는 똑똑히 알았다. 그녀의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몸에서 사라진 순간은 바로 그때였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그녀는 카이두 장군을 떠올렸겠지. 나의 질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그 사내에게 갔습니까?
나는 어쩌고 그리 떠난단 말입니까?
나는 죽어서도 그대를 보낼 수 없소이다.
무덤을 성대하고 화려하게 짓거라!
공주 무덤 곁에 나의 무덤까지 기어코 함께 만들거라”
카이두 장군이 군막에서 내게 던진 그 오만한 눈빛. 내 왕후가 자신의 곁이었다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 확신하던 그 건방진 시선이,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잊히지 않았다. 그녀를 영원히 모실 영전을 가장 크고 화려하게 만들 것이다. 그녀는 내 곁이어야만 행복하다는 사실을 기필코 증명해 보일 것이란 말이다!
1365년 2월, 축월에 노국대장공주 마마는 승하했다. 전하는 공주마마의 유일한 흔적이라며, 생전에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나를 전하 곁에 두어 보필하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367년, 성균관이 재건되면서 예조정랑 정몽주는 성균박사로 임명되었다. 이는 공주마마가 정몽주를 각별히 아꼈고, 그의 스승 김득배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겼던 뜻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허나 공주마마가 우리 곁을 떠난 이후, 전하의 영혼은 조금씩 갉아먹히기 시작했다.
전하는 직접 공주마마의 초상화를 그리고, 살아 있는 듯 그림에다 말을 걸었다. 식사를 할 때면 반드시 그 초상화를 곁에 두었고, 고기반찬은 일절 상에 올리지 못하게 명하였다. 그것은 마치 산 자가 망자에게 바치는 속죄 의식처럼 느껴졌다. 전하는 모든 정사에 손을 놓았다. 정전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갔고, 백성의 고단한 삶을 짊어져야 할 왕은, 끝을 알 수 없는 상실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대신들의 끊임없는 후사 요구에 전하는 병적으로 몸서리쳤다. 후사 때문에 공주마마가 죽음으로 내몰렸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공주마마를 잃은 상처가 너무 깊었던 탓일까, 전하는 어떤 후궁도 가까이하지 않았고, 여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대신 젊고 아름다운 사내들로 이루어진 ‘자제위’를 꾸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 지독한 아픔을 감당할 수 없어 그가 택한 도피처로 보였다. 결국 이 기이한 행보에 보다 못한 명덕태후 마마께서 그를 자신의 처소로 부르셨다.
“주상, 대체 어째서 비빈들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입니까?”
태후마마는 참았던 노기를 터뜨리고 말았다.
“공주만 한 여인이 없습니다.”
비루하고 애처로운 고백이, 한없이 가라앉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곧이어 전하의 메마른 모래 같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마음이 이토록 아리고 저립니다. 제 평생, 그녀를 단 한 번도 이해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저만 이해받고자 했습니다. 그녀가 제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바랐단 말입니다.”
울분이 섞인 목소리가 순간 격앙됐다.
“저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이해해 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노국공주의 명복을 비는 일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보잘것없던 저에게 명분이 되어 주겠다고 말한 유일한 여인이지 않습니까? 이런 제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시겠습니까?”
전하의 숨 넘어갈 듯한 울음소리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저리게 만들었다.
태후마마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한번 죽는 것은 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주상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거늘, 어찌 이리 심히 슬퍼하십니까? 남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으니 이제 그만 울음을 그치십시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전하의 집착은 이제 광기가 되어 끝없이 폭주했다. 영전의 망새는 단순한 공주의 혼을 모시는 건물을 넘어, 전하의 무너진 마음을 드러내는 거대한 광기의 상징이 되어갔다. 그 방대한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 황금 650냥이라는 천문학적인 국고가 무참히 탕진되었다. 강제 징발된 인부 스물여섯 명이 압사하는 참사까지 벌어졌지만, 전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멈출 줄 모르는 집념 앞에서 그는 어떤 희생도 개의치 않았다.
좌정승 유탁은 백성의 고통과 무너져 가는 국정을 거듭 상기시키며, 공주의 무리한 장례를 중단해 달라 수차례 청했다.
"전하! 지금 온 백성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사옵니다! 부디 이 나라의 근본을 헤아리시어 이 모든 것을 멈춰 주시옵소서!"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그리고 필사적인 결의가 가득했다. 그러나 전하는 들리지 않는 듯 차가운 얼굴로 일관했다.
"경은, 더이상 나의 귀를 거스르지 말라."
나지막이 읊조린 전하의 목소리는 참으로 서늘했다. 거듭되는 왜구의 침입에 맞서던 당대의 명장이자, 오랜 세월 전하 곁에서 직언을 마다치 않던 그였다. 허나 전하는 일언반구의 여지도 없이, 가차 없이 그의 목숨을 거두어 갔다. 왕을 향한 충정으로 가득했던 대신들은 하나둘 숙청되거나 혹은 숙청이 두려워 입을 닫았다. 전하의 곁은 이제 간신배와 무뢰한들로 채워졌다. 궁궐은 비굴한 아첨과 방탕한 웃음으로 추악하게 들끓었으며, 산하 곳곳에는 탐욕과 부패가 만연했다. 백성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외적의 노략질과 혹독한 수탈 속에 신음했으나, 전하는 그 모든 것을 외면했다. 그의 눈은 오직 죽은 공주의 무덤을 향할 뿐이었다.
전하의 고독한 광기는 더욱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치달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공허함과 비틀린 집착으로 만들어낸 자제위 무리에게 결국 가장 비참하게 시해당했다.
7년여간의 준공 끝에 1373년에야 비로소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공주의 무덤, 정릉. 그리고 그 완공 1년 만인 1374년, 전하는 이미 완성돼 있던 자신의 무덤, 현릉으로 향했다. 산 자가 제 무덤을 미리 지어 두더니, 결국 곧이어 묻히고 말았다. 어쩌면 전하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이 생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사랑. 부디 다음 생에서만큼은 그 어떤 번뇌도 없이 온전한 사랑을 이루시길 바라겠나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