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치료에 1000만 원 쓰고 공유하는 한글 느린 아이를 위한 비법서
아들이 7살이 되었다! 한글도 모르고!
아들이 딱 7살이 되는 첫날을 선명히 기억합니다. 이제만 1년 뒤면 나라의 정식 교육기관에 입학한다는 초조함이 한껏 더해진 한 해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미 한글을 뗀 아이 혹은 혼자서 무엇이든 잘 해내는 아이였다면 설렘으로 가득 찼을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는 우리 부부가 보기엔 아직도 영유아의 그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한글부터 떼야했습니다. 마음이 급했습니다. 저는 시중에서 아주 유명한 한글책을 세트로 사와 아침마다 출근 전 아이를 붙잡고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저녁마다 영어유치원 숙제를 봐주면서 몸과 마음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덧셈/뺄셈, 한글 유창하게 읽고 쓰기, 혼자 화장실 뒤처리 하기, 젓가락질까지 초등학교 입학 전 해야 할 일은 산더미 었습니다. 지금까지 부모가 알아서 해주었던 작은 일까지 내년 3월부터는 아이는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급한 부모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아이도 함께 불안해했습니다. 3개월이 지났지만 불안감은 한층 더 커졌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아, 어 마저도 계속해서 틀리고 헷갈려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 6세 때부터 다니던 영어유치원에서는 7세가 되니 점차 읽기/쓰기의 비중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또래에 비해 한참 뒤처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글도 제자리걸음인데 파닉스(알파벳의 ‘글자’와 ‘소리’를 연결하여 배우는 영어 학습법)라고 진도가 쭉쭉 나갈 리가 없었습니다. 영어유치원의 담임교사가 아이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지속해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영어유치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다른 대안으로 동네에서 상당히 유명하고 배테랑이신 나이가 지긋한 한글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종이접기를 적절히 섞어 집중시간에 따라 흥미를 조절하며 진도를 나가는 분이셨습니다. 저희 아이는 집중력도 짧은 편이라 수업 방식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배테랑 선생님이 오셨으니 한글을 떼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역시.. 처음부터 전문가 등판해야 했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 입학까지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이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수업 무렵 선생님은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좀 달라요. 난독증이 의심됩니다. 검사받아보시고 난독증이라면 제가 아니라 전문 기관이나 센터를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망치로 머리를 때려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전에 내가 ‘아이가 혹시 난독이 있는 거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남편이 비웃었던 기억이 곧바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자애들이야 이 나이 때에는 다 이 정도는 산만하고 나도 어렸을 때 그랬던 것 같은데 오버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날로 당장 난독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관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난독 검사를 받았습니다. 현재 사는 지역에서는 최소 3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곳이 많아 빠르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지역으로 가 검사를 받았습니다. 난독이 맞다면 빠르게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그 주 주말, 난독증 판명을 받았습니다. 명백한 난독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읽을 수 있는 글자가 거의 없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난독 판명을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심정은 처참했지만 그래.. 그래도 빨리 발견해서 괜찮을 거야.. 좋을 거야.. 좋아질 거야.. 이제부터 하면 돼.. 아직 시간이 있어..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난독 치료를 위한 센터에 이곳저곳 전화/방문을 해보고 고심하다 저희는 집으로 전문 선생님을 모시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맞벌이인 탓에 아이를 데리고 센터에 출퇴근하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한국난독협회에 전화를 해보시면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난독치료 자격증을 가지신 선생님을 소개받을 수 있습니다. 워낙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수가 적고 이미 스케줄이 꽉 차 계시기 때문에 난독 선생님을 모시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기관을 다니고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모든 시간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100% 선생님의 시간에 맞추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빠르게 선생님을 모실 수 있었습니다. 처음 오셔서 하신 말씀덕에 지난 1년간 전 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난독은 수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제가 알려드린 방법을 집에서 반복 또 반복하는 것이에요. 부모님의 노력이 정말 중요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주말부부라 내가 혼자 오롯이 아이를 키웠었는데 그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 남편은 줄곧 내가 휴직을 하고 애를 키우겠노라 자신 있게 말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정말로 그날이 다가오자 나의 커리어, 동료들의 시선, 회사에서의 입지 등을 무시하기가 어려웠던것 같아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바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이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육아휴직계 1년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글은 난독을 판명받은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배운 노하우를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 부부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이 노하우를 전수받았습니다. 검사비/수업료 등으로 천만 원 이상을 지출했습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얻은 몸으로 부딪힌 노하우를 다른 분들은 조금 더 쉽게 접근하실 수 있도록 전수하려고 합니다.
사실 난독증 치료는 별게 없었습니다. 한글을 주입하는 방법만 달랐을 뿐입니다. 주위 친구들은 한글을 술술 뗄 나이에 아직 한글 시작도 못한 부모님이라면 제 노하우를 받아서 집에서 교육해 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난독을 판별받던, 조금 느린 아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몇 번의 시도에도 나이대비 한글이 느리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까지 시중에 나와있는 한글 가르치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가르쳐야 할지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늦은 것 같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주어 모든 아이들이 안정적이고 즐거운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