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을 무렵.
"어서 오세요. 자리 먼저 확인해 주시고요, 카운터 오셔서 계산하실 때 테이블 번호도 함께 말씀부탁드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함께 개선해갈 수 있는 방향을 말하던 때.
문득 이야기의 답답함에 사로잡혀 마음 탁 트이는 무언가를 보고 싶단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바다가 보고 싶어.'
지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기로 한다.
그렇게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나름의 힐링이라는 테마를 유지하기 위한 책 한 권도 잊지 않고 챙긴다.
수 시간을 움직여 도착한 바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정처 없이 모레사장을 거닌다.
바다에 반사되어 눈을 때리는 수많은 광자로 인해 눈이 부셔 찡그리기도 하고,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있기를 반복한다.
주저앉아 있던 마음은 바다의 양분을 마시며 시나브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카페에 들어가 바다를 바라보며 가져온 책 한 권을 천천히 넘긴다.
텍스트는 항상 같은 내용으로 같은 자리에 인쇄되어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감성의 홍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당시의 책은 서서히 나를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젠 함께 놀기 어려워질 수 있을 거 같아. 어른이 되어 가는 중임을 느끼고 있거든.'
어딘가에서부터 떠밀려왔을 나무조각을 바라본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문득 나무조각과 나의 신세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자각한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각자의 여유를 찾아 무리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온, 그런 동질감.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객체를, 선선한 밤바다의 소리가 어루만진다.
'고생 많았어.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정도는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