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열일곱 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밍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아요."
"아 그러시구나. 혹시 이전에 코로나 걸린 적 있으세요?"
"네, 21년 3월에 한 번 걸린 적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요즘 병원에 코로나가 재유행 중인데, 근래 확진되시는 분들 대부분이 코로나에 걸린 적 없는 분들이시더라구요. 확진됐던 사람이어도 재발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마스크 잘 쓰시고, 증상 있는 것 같으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11월 한가운데서 코로나가 또 말썽이다.
같은 병실 환자 한 명도 지난주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잠깐이나마 병실도 시끌시끌했었다.
대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거지? 으
"밍님 저 내일부터 휴가예요."
"어 그럼 시간 변경되나요?"
"아직 시간표가 나오진 않은 거 같아요. 변동되면 말씀드릴 거예요!"
휴가 전날 치료사 선생님들이 항상 먼저 알려주신다.
스케줄 변동이 있으면 함께 알려주시곤 한다.
"휴가땐 푹 쉬시나요?"
"저 여행 가요!"
"여행~ 어디로요?"
"저 부산! 혹시 추천해 줄 곳 있나요?"
"부산이라.. 선생님 장어덮밥 좋아하세요?"
"그럼요! 오 장어덮밥 잘하는 곳 있어요?"
"제가 부산 한 번 가봤다가 맛있어서, 출장 차 부산 갔을 때 비바람을 뚫고 다녀온 곳이 있어요."
"오! 어디요? 어디요?"
"동경밥상이라는 곳이에요. 광안리에 있어요. 장어 손질이 진짜 기깔나요. 음식도 애피타이저 샐러드 - 식사 - 차밥 으로 나오고, 분위기도 진짜 좋아요. 여긴 제가 나중에 연인이랑 부산 같이 가면 꼭 데려가려고 찜해놓은 곳이에요."
"대박! 저장해 둘게요. 고마워요 밍님."
"그런데 가격이 저렴하진 않아요. 대신 그만큼 분위기부터 맛까지 보장하니까 꼭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동경밥상 오키~ 저장."
"휴가 잘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헤헤"
치료시간에 아무 말 없이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닌, 이런 간단한(?) 이슈 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오며 가며 서로 알고 있는 정보들도 공유하고 생각보다 재밌는 치료시간.
이번 달도 어김없이 돌아온 평가주.
"밍님, 안녕하세요. 담당하던 선생님이 휴가를 가셔서 오늘은 제가 대신 왔습니다. 오늘 처음 뵙는데 바로 평가를 진행하게 됐네요..?"
"아 오늘 평가하는 날인가요. 그럼 후딱후딱 하고 남는 시간엔 운동을 할 수 있을까요?"
"오 그럼요 그럼요. 당연하죠! 그런 자세 좋습니다. 자 그럼 누워보실까요?"
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여러 자세를 수행한다.
"오 밍님, 차트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지셨는데요? 놀랬어요."
"다 훌륭하신 치료사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다음엔 꼭 같이 운동하는 시간으로 만났으면 좋겠어요."
"다음엔 꼭 그렇게 다시 뵈어요."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 당시 평가를 대신해 준 치료사와는.. 물리치료 시간에 만날 수 없었다.
오며 가며 서로 인사만 건넬 뿐.
치료 베드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상체를 내린다.
'어? 내려가네?'
지난 9월에만 하더라도 무릎을 꿇고 상체를 내리려 하면, 다리가 아닌 허리에 많은 부담이 갔다.
거짓말 안 보태고 2~3cm만 내려가도 허리가 진짜 아팠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동작이었는데, 이젠 얼추 몇 번은 되더라.
다만, 많은 횟수를 반복할 순 없다.
3~4번 상체가 내려갔다 올라오면 그 이후엔 힘이 빠져 골반이 틀어지고, 허리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
최초 한 번이라도 정자세가 되는 게 어디야.
"밍님 P-Bar로 이동해 볼게요."
"P-Bar요?"
"아 저기 보이는 평행봉이요. 일어나서 제 어깨 잡으세요. 팔에 힘 많이 주시면 안 돼요."
"허허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골반 빠지지 말고. 엉덩이에 힘 빡 주세요."
"후 힘이 안 들어가요."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엉덩이에 힘주고, 팔에 힘 빼셔야 해요. 제 어깨 아파요. 8자 걸음으로 빠지지 마시구요."
치료사와 힘겨루기(?)하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평행봉.
평행봉을 잡고 걸어본다. 발이 11자로 잘 나온다.
"밍님 평행봉에선 발이 11자로 잘 나오네요."
"네. 몸이 안정되니까 11자로 나오는 거 같아요."
"흠 그러게요. 자 그럼 다시 이동해 볼까요. 제 어깨 잡아요."
또다시 춤추기 시작하는 골반과 턱턱 나오는 8자 걸음.
자세나 환경이 불안정하다고 인지하는 순간, 치료시간에 애써 다잡았던 자세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는 몸뚱아리.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암시한다.
"밍님 몸이 불안정하다고 느껴지면 바로 자세가 무너지네요. 그래도 보행보조기나 평행봉에선 곧잘 자세 잘 나오시니 다행입니다"
"컵 필요한 사람??"
단톡방에 울리는 메시지 하나.
스벅 리저브 컵이 생겼는데, 자기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보내줄 테니 얘기해달라 한다.
"나! 병원에서 커피 타 마실 때 쓸래!"
"오! 그래 이건 밍 줘야겠다."
"그래 이건 밍 주자."
단톡방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인다. 그렇게 이틀 만에 받은 컵.
우리나라 택배는 진짜 알아줘야 한다.
지인과 잡담을 나누는 연락을 하던 중 책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병원에서 뭐 하면서 보내?"
"요즘.. 미드 빅뱅이론 다 봤고 영화도 좀 보다가, 텍스트가 좀 읽고 싶어서 책 받아서 읽는 중이야."
"좋네. 읽고 싶은 책 있어?"
"음 인생책 있으면 추천해 줄 수 있어? 그거 읽어볼게."
"오 좋아. 그럼 내가 보내줄게."
그렇게 미움받을 용기 역시 약 이틀 만에 받으며 병원의 내 사물함에 책장 하나가 완성된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즈음이면 퇴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자리 잡는다.
10월 말 즈음부터 새로 배정받은 치료사분들과 재활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밍님 발목 가동성을 좀 더 올려보도록 할게요, 다리 곧게 펴고 앉아주세요."
"선생님 햄스트링이 엄청 땡기는데요?"
"햄스트링이 그만큼 짧아져서 그래요. 잠시 그 자세로 1분만 있어볼게요. 호흡 내쉬시고~"
"후 선생님 살려주세요."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다리 길어지게~ 다시 호흡 천천히 내뱉으세요."
짧지만 강렬하게 고통스러웠던 스트레칭이 끝나고 발목 운동을 시작한다.
"밍님 그 자세에서 발목을 바깥쪽으로 돌려볼 거예요."
"선생님 발목을 돌릴 수 있는 게 맞는 건가요?"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돌릴 수 있어요."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자 새끼발가락 쪽으로 발목을 돌린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주세요."
"끄으으으으"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에선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잘하고 있어요 더더~"
"끄으으으"
"오! 이전보다 좀 더 움직이셨어요. 이제 휴식~"
얼굴은 이미 땀으로 한바탕 세수를 하고 난 뒤.
"선생님 발목 움직이는 건데 왜 허벅지 운동보다 더 힘들죠?"
"미세한 근육을 컨트롤하는 데 많은 집중이 필요하거든요. 게다가 밍님은 신경과 근육이 재생되는 중이라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 그렇군요."
"자 이제 다 쉬셨죠? 다시~ 발목 길어지게~"
허벅지를 뿌실 때와는 또 다른 힘듦이 찾아온다.
"밍님 혹시 오른쪽 발목 다친 적 있어요?"
"고3 여름방학 때 지하철 계단 높은 턱에서 접질려서 3주간 반깁스 한 적은 있어요."
"으 아프셨겠다. 지금 발을 가만히 내려놓고 있으면 오른쪽 아치가 좀 더 떠있거든요. 이게 그때의 여파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아 그래요? 근데 지금까지 막 아프거나 못 걷거나 하진 않았어요.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준 적도 없었구요."
"다행이네요. 그럼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있진 않을 거예요."
보행보조기로 홀로 병동을 휘적휘적 거닌다.
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른 통증이 오른쪽 무릎을 강타한다.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내 무릎에게 반가움을 표한다.
'안녕 밍무릎? 나는 쿡쿡 찌르는 통증이라고 해. 난 처음이지?'
이런 인사는 안 해줘도 되는디. 이건 또 무슨 통증이지.
억지로 발을 질질 끌며 돌아다니다 보니 그새 지쳐서 자세가 틀어졌나?
지금까지 겪었던 근육통과는 완전 다른 종류의 통증이다.
우선 주말 내내 쉬어보고 통증이 계속 남아있으면 월요일에 물어봐야겠다.
게다가 어찌어찌 꼼지락거리던 왼쪽 엄지발가락이 아예 움직이지 않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거 마비증세가 재발하는 거 아냐?
재발하면 또 주사를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가만히 누워있으면서 지금까지 해온 게 말짱 도루묵 되는 거네?
하 큰일이다.'
목-금요일서부터 미동조차 하지 않던 왼쪽 엄지발가락.
다행스럽게도 주말 동안 쉬면서 다시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아 운동으로 지쳐서 움직이지 않던 거였구나.
이런 사소해 보이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의 연속.
그럼에도 다행인 건 조금씩 차도가 보이고 있단 것.
이번 주말이 지나면 나와 같은 질병을 앓고 계시는 분이 퇴원을 한다.
"선생님 내일 퇴원하신다면서요?"
"응. 아우 병원에 있으니 영 답답하기만 하고 잠도 잘 못 자겠고 해서."
"상태는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럼~ 많이 좋아졌지. 여기 처음 왔을 땐 샤워기를 집어들 힘도 없었는데, 이젠 혼자서도 샤워할 수 있어."
"와 진짜 다행입니다. 이제 한 달 반 정도 되신 거죠?"
"그치. 처음에 비해 걷는 것도 많이 좋아졌어. 다리에 힘이 좀 더 들어오는 거 같아. 이제 나가서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게 회복이 더 빠를 것 같아."
"그쵸. 아무래도 병원에서 반복적인 생활만 하는 것보단 일상생활을 직접 해보는 게 더 자극도 다양할 거 같아요."
"맞아. 아무래도 그게 크지. 다른 병원 입원했을 때 주치의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면 일상생활 적응하는 게 더 낫다고 하더라고."
"나가시면 낙상 조심하시고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유 뭘 챙겨준 게 있다고. 밍도 얼른 퇴원했으면 좋겠네. 내가 열심히 기도해 줄게."
"네. 감사합니다."
나와는 달리 왼발과 오른손에 마비증상이 왔다던 길랭바레증후군 환자.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던 나완 달리, 조금이나마 걸어서 들어오셨던 분이 퇴원을 하신다기에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내심 부러운 마음이 크다.
처음 병을 인지했을 때, 한두 달이면 멀쩡히 걸어 나갈 줄 알았으나 아직까지 기약 없는 병원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
시나브로 차도가 보이는 건 맞으나 일상으로 복귀할 날짜는 아직 까마득하다.
군생활은 전역일이라도 알고 했지, 이건 도통 알 턱이 없으니 더 답답할 뿐.
그저 퇴원하는 분을 배웅하며 나도 저런 날이 오긴 올 거란 생각이 자리 잡을 뿐이다.
당장은 주어진 재활 스케줄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