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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연 Nov 13. 2023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열심히, 바쁘게 산다. 그래서 이전에 좀 더 자주 만날 때도 언제나 이따금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전화 통화를 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나마 시간이 비었다고 했다. 수많은 날들이 지나 비로소 우리는 고소한 커피 향이 풍기는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앞에 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주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도란도란 오고 갔다. 오랜만에 대화하다 보니 주제가 대중없이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든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신념과 가치관을 품고 있는지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친구는 신념이 확고하고 매우 성실하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였을까? 친구는 주변인과의 사이에서 본인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해 화가 났던 일과 반대로 상대가 본인을 이해해주지 않아 속상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들으니 양쪽의 가치관과 상식도 다르고, 신념도 달라 빚어진 작은 마찰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그렇게 했나 보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라고 하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해해. 하지만..."


  각자의 입장만 놓고 보면 모두 충분히 이해할 법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내가 당사자 중 한 사람이 되면 나 역시 답답하거나 화가 나거나 서운했을 것이다. 머리로는 '그 사람은 이런 성향이고, 이런 상황이니 그럴 수 있었겠다'라고 애써 이해할지언정 심정적으로 보면 여전히 '그래도 내가 옳아'라는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의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위를 아예 넘어서면 머리로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최근 '상식'이라는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대방에게서 다소 과격한 투로 이런 말을 들었던 탓이다.


  "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내가 볼 땐 상대의 말과 행동이 비상식적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볼 땐 내가 비상식적인 사람이었다. 우리의 상식에는 놀라울 만큼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았다.


  상식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여기서 '보통'이라고 하면 모두는 아니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 지식에 동의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란 말을 들으니 과연 상식이 존재하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말을 했던 사람 외에도 나와 상식의 범위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을 여럿 만나봤기 때문이다. 한번은 정말 너무 이해가 안 돼서 진지하게 '이 사람은 정말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세상에는 각자 다른 처지에서 살아가는 각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내 그릇은 여전히 나 하나 품기도 빠듯할 만큼 작다. 그래도 친구와 나눴던 대화, 내가 주변인과 마찰을 겪으며 '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하고, 이 사람에게 내 입장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던 기억을 곱씹어 보 불과 몇 년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음을 느꼈다. 비록 내가 모두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거나 모두를 포용할 수는 없어도 '그럴 수도 있겠다' 혹은 적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니 약간은 자유로워지는 기분마저 든다. 사람이 성숙해진다는  어쩌면 이렇게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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