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문제인 목, 어깨, 허리 통증을 달고 사는 저지만 그래도 몸을 이리저리 달래 가며 한동안 꽤 오래 버텼습니다. 가뜩이나 제가 겪는 증상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치료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인데, 병원비도 만만찮은 데다 시간적, 심적 여유도 부족했던 탓이죠. 그러나 가벼운 운동이나 스트레칭 정도로 몸을 달래는 데도 한계가 왔나 봅니다. 밤새 뻣뻣하게 굳은 몸을 풀어주려고 스트레칭을 좀 하려는 와중에 도리어 목과 어깨의 근육이 놀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대단히 어려운 동작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뿐인데 가엾고 예민한 제 근육은 단단히 놀랐는지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죠.
근육이 놀라는 것이야 종종 있는 일이니 웬만하면 적당히 넘어갔겠지만 오늘은 왠지 병원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목, 어깨가 부쩍 굳은 것을 느꼈던 데다 심리적 스트레스도 있다 보니 오랜만에 나를 아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다니던 수학 학원과 같은 건물에 생긴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습니다.
오랫동안 들어가 보지 않은 건물에 들어가 오랜만에 계단을 밟아 오르니 낯설기도 하고 왠지 설렜습니다.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건물의 회색 계단에 불과했지만요. 병원은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상보다는 오랜 대기 시간을 거쳤고,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 마지막 단계에서는 원장님께 직접 시술을 받았는데 계속 여기가 아프냐 저기가 불편하냐고 물으며 제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눌러보던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습니다.
"잠은 잘 주무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그렇게 잘 자진 못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잠드는 게 힘드세요 아니면 자꾸 깨세요?"라고 한 번 더 예의 그 다정한 목소리로 질문하더니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비록 제가 수면 문제로 병원을 찾은 것은 아니라도 잠은 건강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니 의사가 환자에게 잠은 잘 자냐고 물은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겁니다. 다만 그 일상적인 물음 하나가 왜인지 제게는 따뜻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질 좋은 수면을 제때 취하지 못하는 것도 제가 늘 하는 건강 고민 중 하나라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요 며칠 잠 때문에 유독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어쩌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별 뜻 없이 했을 한마디에서 멋대로(?) 진심 한 조각을 찾아낸 저는 내심 기쁘고 감사했습니다(그래도 완전히 저만의 착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은 억지로 꾸며낸다고 전해지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책 《I WISH...》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최초로 배웠던 사랑은...
내가 괴롭고 슬프고 지쳤을 때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밥은 먹었냐고 물어봐 주는 것.
"잘 잤어?"
"밥은 먹었고?"
참으로 일상적인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 정말 상대방이 '안녕한지' 알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담겨 있다면 사랑을 전하기에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그 상대가 꼭 가족이나 연인처럼 아주 가까운 사람일 필요도 없죠.
여러분, 잠은 잘 주무시나요?
혹시 그렇지 않다면 이 글을 읽은 오늘 밤은 꼭 푹 주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