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약간의 위로가 필요해서

  살아가는 동안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참 많다. 나중에 보면 별것 아닌 일도 그 당시에는 서럽고, 억울하고, 쓸쓸하고, 화가 나서 누구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내 편을 들어주는 친구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듯 전화 한 통이면 달려 나와 포장마차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주인공을 위로해 주는 친구가 내게도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드라마에서 본부장님이나 재벌과의 로맨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은 언제나 주인공의 스케줄에 딱딱 맞춰 필요한 도움과 위로를 주는 단짝 친구의 존재가 아닐까?). 막상 친구에게 일러바치며 어리광을 부리고 나면 오늘도 내 편을 들어준 친구에게 참 고마우면서도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 친구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은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해진다. 그래서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지만 매번 쉽지 않다. 이런 걸 보면 겉으로는 쉽게 나이를 먹어도 정신연령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사실 누군가가 무례하게 뱉은 말 한마디로 상처받은 일 정도는 다른 이에게 말하기도, 위로받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비교적 사소한 일이니만큼 말하기도 쉽고 위로하기도 쉽다. 하지만 정작 더 무겁고 큰 고민이 있을 때는 위로를 청하기도, 위로를 주기도 어렵다. 예전에는 가장 가깝다는 이에게 기대를 품었다. '그래도 이 사람이라면 내가 힘들다고 할 때 귀 기울여 들어주겠지? 틀림없이 나를 위로하고 보듬어 줄 거야.'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상대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대체 뭐가 그리 힘드냐며 몇 차례 질문하더니, 내가 거기에 답한 후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 매번 징징거린 것도 아니고, 누르고 누르다 못해 터져 나와 겨우 이야기했는데 그 결과가 이거라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몇 번 더 시도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상대가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다. 평소에는 별말도 없다가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럽기도 했겠고, 어쨌거나 자기가 직접 겪은 상황도 아니었으니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애초에 감정 표현이나 공감에 그리 섬세한 사람도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사람이 내게 줄 수 없는 것을 바랐고, 그 사람은 당연히 그것을 주지 못했다. 이제 나는 덧없는 기대로 나와 타인을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나도 모르게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하는 때도 있지만, 조금씩 기대를 버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태반인데 상대가 내 기대에 맞춰주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위로는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요즘 세상엔 다양한 콘텐츠가 즐비하다. 글이든 영상이든 음악이든 내게 위안을 주는 것,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즐길 수 있다. 책이나 영상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때로는 따스히 공감받는다. 새로운 지식도 물론 반가운 보너스다. 듣는 게 아니라 말하고 싶을 땐 대나무숲처럼 나를 터놓을 공간으로 온다. 그래, 바로 이곳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아무리 주절거려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저 이렇게 자신에게 약간의 위로를 선물하면 그뿐이다. 고맙다.

  요즘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다 깨달은 것이 있다. 말 속에 감춰진 알맹이를 보면 사실 약간의 위로와 공감을 바랄 뿐이지만, 그것을 더 솔직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지 못해 거친 말과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서투르게 내뱉는다는 것이다. 섣불리 내뱉은 말은 결국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때로는 비수가 되어 내려꽂힌다. 아무리 화가 나고 서운해도 조금 더 부드럽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상대의 말이 거칠어도 그 말 뒤에 숨겨진 '나를 좀 봐줘. 나를 이해해 줘. 나를 사랑해 줘.'라는 메시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그렇게 서로 상처 내지 않고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지혜로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