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연 Jun 05. 2023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었다


  정말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오늘의 책은 이연 작가의 그림 에세이 《매일을 헤엄치는 법》이었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생각보다 두툼해서 놀랐다. 안 그래도 무거웠던 가방에 책까지 더하니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가 더욱 묵직해졌다.


  첫 글 <잃어버린 독서를 찾습니다>를 쓴 이후에도 나는 계속 독서를 찾아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에 한 책만 집중해서 읽고 다음 책으로, 또 다음 책으로 휙휙 넘어가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이 책도 저 책도 꼭 읽어봐야만 할 것 같았고, 한 책을 초반에 상당량 읽었다가도 다음 부분을 계속 이어서 읽을 마음이 쉽사리 들지 않아 결국 새로운 책을 건드렸다. 눈길을 잡아끄는 화려한 간판과 네온사인이 가득한 번화가에서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서 이쪽 길도 저쪽 길도 섣불리 택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한 번에 한 가지 책만 읽기'라는 제약은 굳이 두지 않기로 했다. 뭐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두는 편이 나으니까.


  '독서를 되찾는 작업'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고 즐거운 독서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마주한다. 걸림돌은 다름 아닌 내 마음의 조각들. 책을 다루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책 읽는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린 거 아니냐는 타박, 남들은 매일 몇 시간씩 독서를 한다는데 너는 왜 매일 조금씩 읽는 것도 좀처럼 해내지 못하냐는 질책, 얼마나 읽었는지 자꾸만 페이지 수와 시간을 확인하게 되는 조급함, 책 대신 스마트폰을 집어 들 때 무의식적으로 생겨나는 죄책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읽어내고 싶다는 강박 등. 알게 모르게 피어오른 이러한 생각과 감정 때문에 나는 수월하게 독서를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이연 작가의 《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만났다. 그리고 단 두 시간 만에 읽어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생각보다 두께가 있는 편이었지만 대부분 내용이 만화로 구성되어 그만큼 텍스트가 적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만화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코 가볍지 않았을 마음과 경험을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이 구성해 낸, 그래서 독자가 이야기에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한 작가의 기획력과 표현력 때문이리라.


  《매일을 헤엄치는 법》은 작가가 퇴사 후 성공적인 유튜버로 자리 잡기까지 자신을 토닥이고 응원하고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 '나'를 찾아가고 먹여 살리며 고군분투한 1년여의 기록이다. 이 기간 동안 수영을 배우며 삶의 깨달음을 얻고 하루하루 꾸준히 나아간 모습이 네이버 웹툰 《수영만화일기》의 해오 작가와 닮아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최근에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매일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면서 진정한 '나'를 찾았던 그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녁을 먹고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섰다. 이어폰을 챙겼지만 굳이 무언가를 듣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밤하늘은 구름과 하늘이 전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흐렸고, 어제는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선명했던 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오늘 읽은 책 덕분일까, 마음이 흐리멍덩하거나 뿌옇지는 않았다. 내가 걷고 있는 길, 내 앞에 놓인 풍경이 어느 때보다 또렷이 보였다. 소위 말하는 '현실'을 떠올리자면 여전히 한숨이 나왔지만 길을 걷는 그 순간, 그것만이 내가 처한 진짜 '현실'임을 자각했다. 오늘도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오래 현존하려고 집중하며 빠르게 걸었다. 오늘도 나는 살아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쓰오부시의 산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