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엄마가 쓰는 너의 세계
안녕하세요. 인생정원사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자폐를 가진 어린이, 우리 집 정원이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먼저 '정원사'는 제 필명이고요, '정원이'는 아들의 애칭입니다.
주변을 세밀히 살핀다면 가까운 곳에서도 자폐를 가진 아이를 만나신 적이 있을 거예요. 혹여나 그때 만나셨을 때 어떠셨나요? 어렵거나 낯설지 않으셨나요?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저 역시 정원이를 낳기 전에는 그랬답니다.
자폐 스펙트럼은 하나의 장애 범주로 묶여 있지만 각각의 아이들이 달라요. 전 그 세계를 보는 한 개의 프레임을 드릴 뿐입니다. 부모님이 아니라 아이들을 마주칠 수 있는 또 다른 어른들을 위한 글입니다. 보호자들끼리 이야기 할 때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거든요.
물론, 제 이야기는 성공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 성공담이 어딨겠어요? 아이의 인생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지요. 대단하다거나 칭찬받고자 쓰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정원이와 저는 이랬어요.'란 이야기입니다. 이런 삶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는 제 아이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정원이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안내서입니다. 저 역시 이전까지 전혀 겪지 못했던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안내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저에게도 해줬으면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설명이 필요한 분들께ㅡ이 글을 읽으실지도 모르는 진단 이전의 어린 정원이를 키우시는 부모님들께도ㅡ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정원이를 직접 본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진 속의 정원이는 너무 예쁘게 웃고 있다고, 눈빛이 평범하다며, 이 아이가 정말 자폐가 맞냐 묻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실제로 일상생활에서도 길을 걷고 손을 잡고 걷는 중에 얌전히 있는 모습을 보면 어르신들이 말을 거시지요.
"아유, 잘 생겼네, 몇 살이니."
아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면 제가 대신 답합니다.
"아이가 아직 말이 느려요."
이윽고 따라붙는 한 마디.
"남자애들은 다 그래요. 걱정마요."
거리에서 스치는 인연에게는 큰 설명 없이 "네에."하고 답하곤 했어요.
조금 자라서는 아이가 소리를 조금 지르거나 콩콩 뛰는 모습이 어색해졌습니다. 3살 때 귀여웠던 행동은 8살이 되어선 어색해집니다. "발달장애"란 아이의 발달이 나이에 맞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느 부분이 도달하지 못하느냐는 들쑥날쑥합니다. 몸은 쑥쑥 자라지만 그 간격은 점점 벌어졌어요. 그래서 손을 잡고 걸을 때는 제가 미리 말합니다.
"정원아. 살금살금. 약속."
신이 나서 나름 소리를 커지거나 높아지면,
"정원아, 소근소근."
이라고 말해요. 더해서 손가락을 제 입에 대어 보여줍니다.
그러면 정원이는 입을 가리고 눈으로 씩 웃어줍니다.
이 간단한 의사소통도 무한한 연습 끝에 이루어졌어요.
새학년에 올라가면 새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지요. 모든 선생님이 자폐성 장애 아동을 만나보신 것은 아니예요. 그래서 저는 10장 이내의 정원이의 설명서를 준비합니다. 아래 사진은 그 일부입니다. 사진을 일부러 가장 예쁜 사진이 아닌 적절한 사진을 골라요. 정원이의 목에는 실리콘 목걸이가 걸려있습니다. 종이나 나무를 씹기 전 "대체물"로 입에 넣는 거를 가르쳐주었어요. 아래의 슬라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기다려 주기'입니다. 아이는 세상을 분명 배워가고 있지만 매우 느리게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장애'란 그 도달점이 여느 성인까지의 발달에 이를 수 없음을 의미하거든요. 그리고 그 도달점은 아이마다 달라요.
자폐스펙트럼은 그 정도에 따라 세 가지 단위로 나뉩니다. 레벨 1 ‘마일드’는 도움이 필요하나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레벨 2 ‘모더레이트’는 생활에서 도움이 절반 이상 필요한 경우입니다. 레벨 3 시비어는 일상생활 전반에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발화가 어려운 경우가도 있습니다. 작년에 ‘프로파운드 오티즘(profound autism)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경우는 항상 24시간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로 여러 중복장애 등의 복합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정원이는 24시간 잠들 때 빼고는 늘 누군가 지켜봐야 하는 뇌전증을 가진 중증자폐로, 레벨 3 시비어와 ‘프로파운드 오티즘(profound autism)’의 사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혼자 할 줄 아는 게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아주 느린 속도니까요. ASD 아동(자폐)나 ADHD 아동이 먹는 약도 부작용 때문에 쓰지 못해 약물치료도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현재 자폐성 장애 2급으로 장애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현행 평가제도에 있어 급수는 표기하지 않지만 주차증이 발급되는 자폐성장애는 구 1, 2급입니다. 자폐성장애를 진단받기 위해서는 중요한 검사가 있습니다. CARS점수가 30점이 넘어야 합니다. 정원이가 장애등록시 이 점수가 36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중증자폐로 진단 받았어요. CAR S점수 외에도 이는 사회성숙도, 지능점수, ADOS ADOS & ADI-R 검사 등의 결과를 종합하여 장애정도 심사용 진단서에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GAS점수를 평가합니다. 정원이의 경우 당시 10점이었어요.
상세히 말씀드리자면, 정원이의 실제 점수는 만 4세6개월 실시했던 장애등록 시점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지능은 46점(지시수행이 어려워서 책정이 힘이 듭니다), ADOS-2는 19점(진단기준 11), ADI-R의 경우 사회적상호작용 19점(진단기준 10), 의사소통 13점(진단기준 7), 행동의 제한/반복적 특성 2점(진단기준 3), 36개월 이전에 발생 4점( 진단기준 1)입니다. 이외에 사회성숙도 검사는 2년 6개월 지연이었어요.
*정원이의 경우 반복적 특성이 높지 않아서 자폐성향이 높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 또한 스펙트럼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병원에서 시행하는 검사조차도 하나의 근거로만 판단하기 어렵단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숫자로 본다면 정말 얼마큼 느린지, 혹은 얼마나 다른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정원이는 수용언어를 제외한 많은 부분에서 현저한 지연이 있습니다. 기저귀를 완벽하게 떼지 못해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손가락이나 손짓으로는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언어의 발화는 거의 없어요.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함께 동반하고 있거든요. 수용언어는 다른 영역에 비해 다소 높은 편이지만, 듣고 행동함(실행 영역)에 있어도 3~5초의 지연이 있습니다. 졍보 처리의 속도에서도 딜레이를 보입니다.
이제 정원이의 이야기를 한 조각씩 나누면서 정원이가 가진 '자폐'에 대해 하나하나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엄마의 눈으로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한 가족의 눈이기도 하지요. 다만 자폐는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아이마다 가진 특성이 다릅니다 . 그래서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에서는 정원이의 '오늘'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입니다.
조금 딱딱하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잘 설명할 수 있을만큼 저도 성장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이의 장애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봐주신다면 그 시선과 이해만으로도 고마울것 같아요. 진심으로, 간절히.
그럼, 우리 정원이 잘 부탁드려요.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sd-papers
용어설명
1) 아동기 자폐증 평정 척도 (CARS)와 사회성숙도(SMS)
CARS :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지적장애와 같은 기타 발달장애와 변별하도록 돕는 척도입니다.
SMS : 출생부터 30세까지의 자조능력, 이동능력, 작업능력, 의사소통, 자기관리능력, 사회화 같은 행동능력을 평가하는 척도입니다.
2) 자폐 스펙트럼 검사 ADOS & ADI-R
(Autism Diagnostic Observation Schedule, Autism Diagnostic Interview - Revised)
ADOS : 아동을 직접 면담하거나 놀이를 함께 함으로써 아동에게 사회적인 상황을 제공하고 여기에서 나타나는 아동의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작용,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 및 행동 양상을 평가하는 검사도구 입니다.
ADI-R : 의사소통, 사회적 관계맺기,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 패턴의 영역에서 아동의 발달을 평가하고, 자폐스팩트럼 장애의 진단을 돕기 위한 심층 면담 검사입니다.
3) 전반적 발달 (장애) 평가 척도 Global Assessment Scale (for the Developmentally Disabled)
발달장애 평가 척도로 자폐성 장애의 정도를 평가할 때 사용됩니다. 사회생활, 직업생활, 정신적 기능을 잘 수행할수록 100에 가까우며 시작은 1에서 합니다. 0에 가까울수록 전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폐성장애 1급 진단은 0~20점, 2급의 경우 20~40점이 기준입니다.
출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