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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폐를 알아차리다

그리고 알아차리면 해야 할 것들

by 인생정원사 Feb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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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후회 없이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요?


처음 제목을 정하자마자 든 생각이었습니다. 미룰까,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할까. 결국 연재일이 코 앞이 되어서야 노트북을 꺼내듭니다. 참 이상하죠.  어떤 이야기는 금방 써내려가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이야기는 첫 줄부터 쉽지가 않습니다. 네, 오늘의 이야기는 저에게는 매우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그 이야기부터 먼저 시작해야겠어요.


아이가 언제부터 다른 지 눈치채셨나요?

이 질문은 같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만나면 종종 나누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이제는 덤덤하게 말할 수 있지만, 저 역시도 초기에는 부정과 분노, 수용의 단계를 다 거쳤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저의 경우에는 아이가 15개월 때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자폐", "호명". "인지" “모방” 등의 키워드를 검색했습니다. 정원이는 눈맞춤은 좋았는데 말귀가 느린 거 같았어요. 첫걸음은 12개월에 바로 걸었는데 물건심부름이나 가리키기는 못했어요. 아이가 방긋 웃었지만 상호작용의 느낌은 아니었어요. 육아는 힘들다 들었고 애가 크면 좀 수월해진다는데 제가 느끼는 힘듦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어요.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아요. (호명)
눈맞춤이 잘 되지 않아요. (상호작용)
물건 이름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인지)
곤지곤지를 따라 하지 못해요. (모방)


아이의 사회성과 상호작용, 인지 그리고 모방에서 마트 문화센터나 조리원 동기 아이와는 조금씩 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어요. 정원이의 경우, 정원이보다 3살 많은 친정조카를 제가 종종 봐주고는 했는데  조카랑 정원이는 조금 달랐습니다. 단순히 "말이 늦는다는 것"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20개월에 결국 영유아검진을 대학병원에서 하고 24개월 되자마자 '베일리 검사'와 '카스 검사'를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베일리 검사에서는 모든 발달이 측정이 어려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간단한 검사도 듣고 수행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몹시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부정했습니다. 카스점수도 19점이었거든요(2돌 검사 기준). 진단 기준은 30점 이상이 아닌가? 사실 이 결과는 부모의 객관적이지 못한 의견이 들어간 결과였을 거예요. 그러나 점수와 상관없이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다름은 의사소통과 모방의 부재가 제일 컸습니다. 지금이라면 바로 조기중재를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이라면 울지 않고 더 많이 공부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하면 된다. 이런 마음으로요. 마음 한편이 아릿한 것은 그 시절에 더 노력했으면 아이가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았을까 마음이에요. 지금이라면 장애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어린이집을 보내봤을 거 같아요. 기관에 보내긴 너무 어린 아기. 죄책감이 컸어요. 그래서 내가 노력하는 방향으로 애썼습니다. 그래, 수업도 열심히 듣고 내가 가정에서 좀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요. 너무 많이 애써왔는데도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네요. 1년 뒤에 이렇게 글 쓰지 말고 더 아이를 위해 노력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돌이켜보면, 정말 늦지 않았습니다. 병원을 가고 치료를 결정하고 일련의 모든 선택과 시기가 늦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더듬더듬 길을 가기보다는 누군가 보다 프로페셔널한 경로를 가르쳐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지금도 있어요. "아 그때 내가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아 그때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기능을 조금이라도 빨리 배웠더라면" 이런 가정법을 하는 이유는 아이의 오늘이 조금 더 수월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거예요. 이것은 지금의 결과는 오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정원이보다 성향이 두드러지고 늦게 진료를 보고 재활을 시작했더라도 빠르게 따라잡기가 되는 아이도 종종 보았어요. 아이의 인생도 빨리 출발했다고 빨리 도착하지 않나봅니다. 사실, 이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직도 아파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울지 말고 당장 일어나'라고 옆에서 소리치고 싶어요. 누구나 과거의 자신의 선택을 탓할 순 있지요. 하물며 자식의 일인걸요. 하지만 그 눈물이 있었기에, 전 노력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노력의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함께 행복해지는 오늘을 생각합니다. 조금 더 아이가 다양하게 세상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합니다. 도달할 수 없는 한계점을 향해 무한히 뛰는 시간도 있었어요. 여전히 매일 1회기 이상의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오늘 무엇을 느끼고 어떤 것을 보는지, 관찰하고 묻습니다. 정원이는 예쁘게 웃고 세상에 대한 무언의 믿음이 있어요. 이제 정상을 향해 따라잡는다는  기적을 막연히 바라진 않아요.


저는 엄마로서 아이가 가진 장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일 느리게 변화하는 아이의 성장을 관찰하고 그 폭에 맞추어 부모로서 대응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때때로 그 성장의 폭은 매우 미세해서 멈춘것만 같아요. 일반적으로 폭풍성장을 하는 보통의 아이들은 눈부시게 성장하고 요구하고 발달하면서 부모도 그 요구에 부응하면서 성장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느리게 태어나면 이는 쉽지는 않아요. 워낙 느린 성장을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늘 하던 대로 하는 습관에 머물 때도 많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정원이를 업었어요. 업을 나이가 한참 지나고, 어깨는 아프지만 오히려 제가 아이를 내려놓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아이는 느린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엄마인 제가 계속 한 자리에 머무는 시행착오를 종종 합니다. 때로는 익숙해진 부모역할을 천천히 바꿔나갈 용기가 필요해요. 저도 그 과정에 있습니다. 아이에게 맞춘 속도로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모든 그림은 chatGPT와 함께 그렸습니다.모든 그림은 chatGPT와 함께 그렸습니다.


그래도 알아차리면 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진단은 의사가 소아정신과 방문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으면 좋습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발달 관련 책 읽어보면 좋습니다. 아이의 성장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 알면 좋으니까요.  
ABA, 언어치료, 작업치료 등 재활치료가 필요한 지연이 보이면 주저 없이 치료에 다녀보세요.
무엇보다 아이의 눈을 마주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못한다고 다 해주면 아이에게 소중한 경험의 기회를 잃어버려요.
단, 서두르지 말고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서요.



- 느린 시계의 정원 매거진 

매거진의 에피소드들은 각각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에세이이면서, <정원이와 엄마의 여정>이란 전체적인 흐름도 함께 합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어린이의 세계>는 그 여정을 함께할 작은 안내서입니다.


- 관련 에피소드

자폐스펙트럼, 꽃들에게 희망을 (1) : 어떻게든, 무한의 시간표의 시절을 살았던 이야기입니다

엄마는 외계인이 되었어 : 엄마도 조금씩 성장하고 꼬 변화하고 있는 이야기지요. 비록 섬 같은 삶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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