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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폐를 공부하다

제 책장을 공개합니다

by 인생정원사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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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뛰어요.
천장의 빛을 보면서 막 웃어요.
종이를 씹어요. 할퀴고, 꼬집어요.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요.
물어요.

정원아, 엄마 아파!


아이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혹은 목적(기능)이 있습니다. 정원이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그 행동의 모습이 흔히 보이는 행동이 아닐 때 엄마는 당황스럽습니다. 분명, 정원이는 엄마인 절 분명 가장 편하고 안전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인 저는 정원이가 낯설 때가 있어요. 처음에는 육아서를 보았어요. 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아이의 행동을 설명하는 육아서는 많지 않았습니다. 찾기 어려웠어요.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말을 걸고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일반의 발달과 비슷하지만 그 시기가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오래 머무는 행동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 무는 행동도 조리원 동기 A는 어린이집 다니는 시절에 주로 겪었지만 정원이는 유치원 때 그 행동을 1년에 한두 번씩 했어요. 주로 모두가 방심했을 때. 정원이가 방긋 웃고, 앉아있을 때가 많아서 사람들은 종종 정원이가 가진 발달보다 더 높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해 방심은 금물입니다. 매일매일 새롭지만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움직일 수 있거든요. 이 경험치는 매일매일 업데이트 됩니다.


<정원이가 제 머리를 잡아당기고 꼬집었어요>란 문장을 보면 정원이는 매우 공격적인 아이로 비칠 겁니다. 사실은 반대입니다. 아이는 내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합니다. 다만, 표현수단이 없을 뿐이에요. 그래서 주로 놀아달랄 때나 머리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싫다는 표현을 꼬집기도 하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정원이가 언어로 알려주지는 못해요. 수없이 관찰하고 바라보아야만 가능합니다. 책장을 살펴보면 제가 아이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제 책장을 공개해 봅니다.

처음에는 아이와 놀아주는 책들을, 말을 걸어주는 책들(일부는 정리), 그리고 아이의 조기개입을 돕는 책들을 구매했습니다. 계속 봐야 할 것들은 소장해서 보고 있어요. 특수교육 관련 도서들은 1판만 인쇄되고 절판되는 경우도 많아서 중고로 구매하기도 합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아이의 발달에 따라 도움이 되는 부분을 발췌해서 보고 있습니다. 12-36개월 육아책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정원이의 발달월령이 이 부근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원리는 같거든요. ABA(응용행동분석)에 관한 책들도 제법 많습니다. 자폐에 관한 책들도 있고, 언어치료에 관한 책들도 좀 있지요. 통합교육, 특수교육에 관한 책들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일상지원, 감각에 관한 문제, 시지각 문제, 일상의 활동스케줄 훈련, 시각지원(TEACCH) 등도 자리하고 있어요. 사진에는 없지만 최근에는 사이버대학교에서 배우는 교안들도 책장 한편에 채워져 있습니다.

저는 정보의 취득으로 동영상이나 블로그보다는 책을 선호합니다. 책에는 기본적으로 방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출처가 분명하고 그때그때 바로 열어서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처음부터 '~카더라'라는 방법은 가보지 않았어요. 병원과 공식적인 재활치료 그리고 책에 의지해서 정원이와 이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늦지도 않았지만 기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매일매일의 하루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책의 내용은 저의 근거가 되어서 정원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행동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의 목적을 알게 되면 적절한 행동을 알려주고 가르치고 대체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에요. 물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정원이는 아니야란 행동을 고개나 손짓으로 하게 되었어요. 이 단순한 손짓하나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원이는 배고플 때 식판을 꺼내와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배고프단 표현이 제스처로는 어렵지만, 카드나 도구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야기는 꼭 음성언어로만 이루어지진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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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책장을 공개해 볼까 해요.


왜 공부하나요?
왜 이런 걸 만들죠?
그 시간에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더 여러가지로 갈라지긴 합니다. 먼저, 아이에 대해, 아이가 가진 이 <자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저와 가족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함께 살아가고 의사소통하면서 아이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정원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는 많은 육아서와 가이드가 있습니다. 자폐를 가졌다 하여 그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조금 다를 뿐이지요. 망망대해에서 등대의 빛은 책 속의 활자에 담겨있습니다. 아이를 재우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여 수많은 기적의 사례와 수많은 안 좋은 예후의 사이에서 오고 갔던 나날도 있었어요.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그 시간들은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게 되면서 조금 나았습니다. 책은 정원이의 수수께끼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물론, 책 속의 답이 정답은 아니에요. 왜냐면 자폐는 '스펙트럼 장애'이기 때문입니다. 스펙트럼이란 말에사 각각의 아이가 가진 자폐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소아정신과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대부분의 엄마는 100일이 지나면 아이와 삶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가 장애를 가지면 죄책감 때문에 혹은 현실 때문에 분리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소진이 온다.' 이걸,  번 아웃이라고 하지요. 저도 하얗게 태운 시간들이 있어요. 아직도 정원이와 100% 정신적 탯줄을 잘라내지 못하고 있지요. 아이에 대한 나무람이 저에 대한 나무람으로 느껴져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정서적 탯줄은 자존감에도 큰 문제를 낳습니다. 저는 행정학 박사학위를 정원이가 태어나기 전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무발화 자폐아동의 어머니로만 저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엄마는 뭔가 부족하거나 가르쳐야 하거나 배울 점이 없다고 대할 때가 있어요. 일종의 내려다봄이지요. 결국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키우는 가족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 시선은 그들의 해석이지만, 주류의 해석은 때로는 그 자체로 사실이 되기도 하니까요. 해석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은 상관없어요. 이는 제가 정원이를 키우면서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느끼고 부딪히는 점이에요.


결국 저는 저만의 섬에서 정원이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리로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그 섬은 때로는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섬과 세상을 연결할 다리는 결국 공부 같아요. 세상 안에서 숨을 내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은 정원이와 제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공부는 책 속에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경험에도 있습니다. 그 경험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전 오늘도 공부합니다. 그 여정을 함께 읽어주셔서 오늘도, 정말, 고맙습니다.



모든 그림은 chatGPT와 함께 그렸습니다.모든 그림은 chatGPT와 함께 그렸습니다.



- 느린 시계의 정원 매거진 

매거진의 에피소드들은 각각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에세이이면서, <정원이와 엄마의 여정>이란 전체적인 흐름도 함께 합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어린이의 세계>는 그 여정을 함께할 작은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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