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와 병원을 가다
정원이가 3학년이 올라가기 전 겨울방학이었습니다. 설 연휴가 지난 직후 열흘간 정원이는 먹지 않았습니다. 전혀 밥을 먹지 않고 요구르트로 연명하면서 내내 누워있다 보니 가파르게 말랐어요. 뾰족한 턱을 보며 마음이 아팠죠. 다행히 본인이 아프다는 것을 알았는지 병원에서 순순히 수액을 맞았습니다. 그날 저녁 겨우 죽을 입에 대더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정원이는 한번 아프면 온몸으로 깨어지고 부서져야만 그 다음의 단계를 배웁니다. 언어로 알려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생각합니다. '약을 먹어야 나을 수 있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참으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인과관계를 납득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ㅡ마치 우리가 우주를 예측하는 것만큼ㅡ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요.
일례로, 정원이는 신생아 시절 생후 69일에 서혜부 탈장수술을 했어요. 수술실에 들어갈 때조차 수액바늘을 뽑아내서 결국 수액 없이 금식하고 수술방에 가서야 수액을 맞았습니다. 마취는 해야 하니까요. 유치원 때도 한번 채혈할 때도 남자 간호사가 3-4명이 붙어서야 채혈이 가능했어요. 아픈 원인을 알기 위해 피를 뽑는다는 것, 그 사이에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결국 어른들이 몸으로 압박해 붙잡아야 한다는 것. 일련의 모든 과정이 힘들었을 겁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빠른 진료가 요구되는 소아과 진료에서는 청진도 귀보기도 정원이에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독감이나 장염 등 또래의 아이들도 흔히 맞닥뜨리는 질병에서도 허들은 계속됩니다. 모든 치료가 어렵거든요. 발달장애인의 평균수명은 비장애인에 비해 짧습니다. 돌발에 의한 사고사도 있을 테지만 병원에서의 치료를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이유도 있을거 같아요. 아마 적절한 치료의 어려움이 노화를 가속화하게 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사건 사고를 찾지 않더라도 그저 평균수명의 뉴스만 보아도 전망은 그리 밝진 않습니다.
장애의 종류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발달장애인의 평균수명은 비장애인에 비해 짧다. 정부는 각종 통계에서 만 65세부터 노인으로 본다. 반면 발달장애인은 만 40세가 넘어가면 노인과 유사한 신체기능 저하를 보인다. 발달장애인을 주로 돌보는 보호자들 대부분도 노인이 된다. 발달장애인의 조기노화도 문제이지만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노령화 역시 사회적 문제로 점차 대두되고 있다.
2021. 11. 4 경향신문, < "나 죽으면 발달장애 자식은 누가 돌보나요"> 중 일부 발췌
최근에는 다행히 편도 30분 거리의 장애아동을 위한 공공어린이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오후 휴진도 많고 주말은 운영하지 않지만 다행히도 아이를 많이 기다려줍니다. 그곳에서 정원이는 청진기를 배에 닿는 것을 받아들였어요. 이번에 아팠을 때, 열흘이나 곡기를 끊으면서 결국 고심 끝에 수액을 맞히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공공어린이병원은 그날은 진료를 하지 않았습니다. 눈보라를 헤치고 간 지역의 달빛어린이병원에는 다행히 날씨 탓인지 평소보다 대기가 무척 짧았어요. 정원이에게 이걸 맞으면 씩씩하게 수업도 가고 밥도 먹을 수 있을 거라 설명해 주었습니다. 조금 아플건데, 괜찮겠냐고도 물었습니다. 아이는 다행히도 버텨내었습니다. 2-3년 사이에 그래도 조금 자랐나 봅니다. 뽑고 싶은 마음을 참더라고요. 수액을 맞는 동안 휠체어를 밀어주었습니다. 아이는 전정감각의 자극을 좋아해서 차를 타거나 유모차 타는 걸 워낙 좋아했거든요. 무려 세 시간이나 지원사님과 번갈아 밀었지만 아이가 기특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수액이라도 맞아서 탈수나 저혈당 쇼크를 막을 수 있었으니까요. 낫기 위해 참는다는 것, 그것이 정원이에게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를 엄마인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아시겠지만, 모든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병원진료를 어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원이는 아직도 어디가 아픈지를 정원이는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워 연습중입니다. 예상컨대 누군가에게 맞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안전과 생명에 대한 절망은 쉽게 희망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가서 차에 치일 수 있다는 두려움, 내가 자는 사이에 현관문을 따고 나갈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늘 있습니다. 손을 잡고 가더라도 내 손힘이 약해서 아이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항상 있어요. 아무리 꼭 잡아도 놓칠 거 같은 어린 생명에 대한 책임은 현관문 잠금쇠를 하고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해서 이동거리가 짧다 해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투쟁은 단순히 길을 걷고, 차를 타며, 마스크를 하고, 매 끼니 아이의 고기에서 뼈를 발라서 잘라주는 모든 활동에서 계속되 있습니니다. 아무리 예방을 해도 어떤 경우는 소용이 없어요. 그런 정원이를 보면서 막막해 하고 울면 아이가 제 감정에 '동기화'되어 불안해하기도 하지요.
안전에 대한 위험은 정원이만 마주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도 있지요. 제 등은 정원이가 어렸을 때 물거나 할퀸 자국으로 빼곡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문 곳이 많고 새 상처는 많지 않아요. 한때는 물린 자국이 많아서 팔다리가 멍투성이라 여름에도 긴 팔을 입고 다닌 적이 많습니다. 누가 보면 오해하지 않도록요. 내 자식에 의한 상처고 이 또한 과정이고 지나가고 가르쳐야 할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만 아니까 혹여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참 이상하죠. 매일 살아가는 안전한 대한민국인데, 이런 투쟁을 나 홀로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살아가고 숨 쉬고 걷는 모든 일상이 마치 파편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나와 현실이 분리된 느낌이요.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들어가면 현실이 지독히도 괴롭고 숨이 막힐 때가 있으니 그런가봅니다. 아이가 아프고 마음이 괴롭고 일상이 지독히도 바빠도 전 생각을 하고 기록을 합니다. 그러면 저를 잘게 부수었던 시간의 파편들이 이어지고, 안팍의 상처가 꿰어지는 그런 기분이 들거든요.
다행히 정원이는 그렇게 열흘간 아프고 나서 체혈에 대해서 수액에 대해서 알게되었습니다. 이제 아프면 병원에 가냐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청진에 협조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치료에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은 정원이가 이 세상에 생존할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또 열흘 간 아팠던 기억은 아이에게 강렬하게 남았기에 지금은 조금만 속이 불편해도 밥을 굶어버립니다. 나름 자신만의 대처였겠지만 또 다른 어려움으로 이어졌지요. 모든 일에는 좋은점도 나쁜점도 함께 오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정원이는 저에게 낯선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저는 계속 아이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것을 바탕으로 학교 선생님에게, 의사에게, 정원이를 돕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곳에서 아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계속 이야기하고 있지요. 오늘도 저는 정원이의 세계에 대해,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 목이 쉬어도 괜찮습니다. 손가락이 아파도 괜찮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만날 또 다른 자폐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이해의 싹이 되어준다면 그것으로도 의미가 있거든요. 때로는 내 아이도 못챙기는 자책이 들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그 내용을 쓰는 게 조금 두렵기도 해요. 아이가 가진 장애는 저에게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일 겁니다. 고단하고 두려울 미래는 제 스스로 헤쳐나가야만 하거든요. 기꺼이.
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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