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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폐를 공부하다

정원이 엄마로 사는 길

by 인생정원사
이 글은 기존 연재글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정원이는 늘 낯설었어요. 아이의 모습은 주변과 무엇인가 달랐어요. 처음에는 초보엄마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죠. 그래서 늘 지켜보았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눈살을 찌푸리거나 활짝 웃으면 그래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찾기 쉬었지요. 하지만 작은 찡그림이나 몸짓 안에 담긴 감정은 알기 어려웠어요. 아이가 울면 아픈지 배가 고픈지 추리했어요. 한 번은 맞고 한 번은 틀리면서 점점 알아가는 횟수를 늘렸지요.

왜 이 아이는 다른 또래들과 다를까? 집안에서 있는 아이의 모습은 익숙한 내 아이 '정원이'였지만,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은 정말 달랐지요. 주변에 물으면 평범한 답이 돌아왔죠.

"책을 계속 읽어주면 돼. 나는 목이 쉬도록 읽어줬지."

“우리 집 아이도 조금 늦되었지만, 괜찮아.”

"많이 산책해 봐. 집에 있는 것보다 여기저기 다니는 게 나을 거야."

정원이가 두 돌이 됐을 무렵, 저는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걸으며 공원과 거리를 쏘다니고, 버스를 타고 마트를 가고 심지어 기차를 타고 가기도 했지요. 세상을 많이, 많이 보여주면 세상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떠나갈 듯이 우는 아이에 낯선 정류장이나 기차역에 내려 아이를 달래고 다시 표를 끊고 해가 다 질 때까지 돌아오기도 했지요.

책이요? 책은 저희 집에 정말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에게 읽어주지 못하고 주변에게 모두 나눠주게 되었습니다. 물려받은 책, 중고로 장만한 책, 새로 산 전집은 모두 정원이에게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장난감을 사도 아이는 관심이 없었어요. 물 흐르듯 아이에게 맞춰 놀았지만 그것으로도 돌쟁이 아기와는 행복했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놀이터에서 또래를 만날수록 조금씩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육아책을 펼쳤죠. 그곳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기대했어요. 그러나 육아책에 쓰인 발달의 순서와 아이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정원이가 두 돌 때 책에 적어놓은 메모를 보면 다음과 같아요.

개인적으로 제일 열심히 본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일춘기는 무사히 통과하고 아이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긍정의 훈육이란 결국 부모의 마음가짐인듯하다. 아이와 더 많이 마주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소통하는 게 아직은 좀 더디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책에서는 평균은 없다는데 주변은 온통 빠른 아이들 투성이다. 그저 단단하게 크고 마냥 뛰어노는 게 행복한데. 대근육만 빠르고 소근육이랑 사회성이 느리니 인지 자조 언어까지 같이 느리다는 영유아검진. 이런 카테고리화 안에 아이를 키우는 것. 맞는 걸까.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게 맞는지 조기개입을 해서 따라잡기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다.
육아란 답이 없다.
부모의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선호도 중요한 거 같다. 육아라기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춰 지내왔다. 그래서 분명 돌까진 좀 느려도 언젠가 다 하겠거니 하고 또 그래왔는데. 지금 역시 일부러 이거 저거 노출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최대한 넓은 세상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거에 주력해 왔다.
그래도 두 돌 되니 한 번쯤 중간 검토가 필요할 거 같다. 다음 주엔 하나의 길모퉁이ㅡ검사가 있다. 부디 아무 일 없길 무난히 크길 기도하자.
믿어주고 기다려주기 그리고 장점을 밀어주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아들 맘껏 안아주고 사랑해 주기, 앞으로 변함없이 그런 엄마로 곁에 있어주자. ㅡ <긍정의 훈육>을 읽고, 2018. 10


정원이의 답은 어디에 있을까. 저는 내내 답을 찾는 여정을 기대하며 ‘자폐’에 대해 공부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아이와 놀고 싶어서 말 걸기, 이야기하기, 놀아주기에 관한 책들을 사서 보았어요. 그러다 언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죠. 조금씩 조금씩 재활에 관련된 책도 읽기 시작했어요. 마음 한 구석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이 자.폐.를.극.복.할.수.있.으.리.라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책 속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문 너머의 세계에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집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실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도 언어와 감각에 대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이 낯선 세계의 단어들은 난생처음 보는 단어들로 가득했죠. 그래서 치료사 선생님들의 말을 알아듣는데도 필요했어요. 더 나아가서 내가 아이에게 말을 더 잘 걸기 위해서도 알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단문으로, 짧게, 낭랑하게, 음율감 있게 아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이의 행동은 그 이유를 잘 모를 때도 많았어요. 이어서 응용행동분석(ABA)에 관한 책들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장에 한 칸, 두 칸 특수교육에 대한 책들이 점점 늘어났지요. 책에 대는 힌트는 있었지만 정원이만의 답은 아녔습니다. 대신 답을 알아가는 중요한 가이드가 되어주었어요.

시간이 지나, 장애등록을 받고 나서는 [자폐], [특수교육] 분야의 책들은 여전히 늘어났습니다. 정원이는 아직 책에서 1-2장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한 줄이라도 아이를 알아갈 수 있는 힌트가 곳곳에 있는 게 좋았어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이 캄캄한 항해의 지도는 책 속에 있었어요. 책은 일반적인 일상지원에 관한 책들에서부터 감각에 대한 책, 시지각 지원과 활동스케줄 등 현실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또 관련해서 그때그때 치료사에게 질문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책 속의 모든 방법을 다 실천할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답을 구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어요. 매번 의사에게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이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을 때, 답답했던 제 마음은 조금 나아졌지만, 그 자리에는 슬픔이 채워졌습니다. 아이가 가진 답답함을 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아이의 행동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 목적을 안다면 적절한 행동을 알려주고 반복해서 가르치고 반응하는 것이 어른의 몫입니다.

저는 초보엄마였고, 모든 어른이 처음부터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었죠. 심지어 지나고 보면 전문가들도 아니었으니까요. 이해가 전제되어야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생깁니다. 이전에는 내가 아이에 대해 잘 몰라서 답이 궁금했다면 지금은 아이 손에 세상을 보는 돋보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공부합니다. 그리고 그 돋보기는 저와 같은 부모도 통합반에서 또 다른 자폐 아이를 만나는 어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적절한 행동과 표현을 가르쳐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원이 울음은 이유가 다양했어요. 정원이는 아니야란 행동을 고개나 손짓으로 하게 되었어요. 이 단순한 손짓하나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원이는 배고플 때 식판을 꺼내와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배고프단 표현이 제스처로는 어렵지만, 카드나 도구를 통해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꼭 음성언어로만 이루어지진 않거든요. 이 하나의 표현을 통해 아이의 울음은 현저히 줄었고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왜 공부할까요? 아이랑 눈을 보고 노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누군가 묻더라고요. 아이와 먹고 자는 모든 순간에 소통해야 합니다. 사실 묻고 싶었던 것은 무발화 아이의 수준에게 불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죠.

자폐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원이 엄마로 사는 길은 매우 어려워집니다. 이해하고 나면 화날 일이 줄어들게 되지요. 일반적으로 세상에는 많은 육아서와 가이드가 있습니다. 자폐를 가졌다 하여 그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요. 조금 다를 뿐이지요. 빛은 책 속의 활자에 담겨있었습니다. 아이를 재우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여 기적의 ‘카더라’ 사례와 수많은 ‘절망적’ 예후 사이에서 오고 갔던 나날도 있었어요. 그 시간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책은 정원이의 수수께끼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스펙트럼이란 말에서 각각의 아이가 가진 자폐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무발화 자폐아동의 어머니로만 저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엄마는 뭔가 부족하거나 가르쳐야 하거나 배울 점이 없다고 대할 때가 있어요. 일종의 내려다봄이지요. 결국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키우는 가족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 시선은 그들의 해석이지만, 그 자체로 사실이 되는 것이 현실이죠. 제가 정원이를 키우면서 일상생활에서 느끼고 부딪히는 시선이기도 하죠.

결국 저는 저만의 섬에서 정원이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리로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그 섬은 때로는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섬과 세상을 연결할 다리는 결국 공부 같아요. 세상 안에서 숨을 내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은 정원이와 제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공부는 책 속에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경험에도 있습니다. 그 경험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전 오늘도 공부합니다. 그 여정을 함께 읽어주셔서 오늘도, 정말, 고맙습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sd-papers


표지 그림은 chatGPT와 함께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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