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느리게 관찰하다.
‘아, 무슨 색깔로 골라야 하나.‘
‘데일리로 할까, 하지 말까.’
프리퀀시의 계절이다. 올해 겨울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진즉에 2주 전에 모였는데, 다이어리 색상을 고르다 여지껏 못 고르고 이제서야 초록색 데일리 다이어리로 예약했다. 돌고 돌아 작년과 같은 선택이다. 3년 전부터 초록다이어리 두 권을 장만한다. 하나는 아들용. 하나는 내 거. 내지는 데일리로 주로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yes24 11월 굿즈로 선택한다. 둘 다 짙은 초록색이 있고 커피랑 책을 좋아해서 구하기 제법 수월한 까닭.
다이어리는 주로 아이 센터 스케줄을 정리할 용도였다. 아이 일정을 적는 다이어리에는 나름 규칙이 있다. 월별 진료 및 학교, 센터 일정 외에도 매일의 1) 수면과 기상취침시각, 2) 식사, 3) 주요 행동 이벤트의 변화, 4) 센터 피드백 5) 준비사항 등을 적고 있다. 물론 매일 적으려 노력하지만 올해 들어선 저 이벤트들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에만 담아두는 나날도 많았다. (여하튼 요 이야긴 무척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독립적인 글로 다루겠다.) 여하튼 아이일정이 너무 빼곡하다 보니, 나만의 일정을 제대로 적지 못하는 거 같았다. 작년부터 분리해서 적고 있다. 전처럼 밀도 있게 한 권에 모아 쓰진 못해도 다른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두 일정을 구분해 보는 연습 자체가 어머니로써의 나와 개인의 나를 분리하는 훈련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일정만 적으면 먼슬리 달력으로도 충분하다. 적고 보면 전업주부의 일정이란 게 참 빈약하기도 하다. 어찌 채워야 하나.
고민 끝에 내년부터는 <매일의 마음일기>를 써보기로 다짐해 본다. 그날의 마음, 그날의 사건을 한 줄 두줄 적어볼 것이다. 물론 그중 일부는 브런치 글의 소재가 되기도 하겠지만, 정확하게는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서 흘러나와 어디로 흘러갈까. 하루의 시간과 생각은 무수한 갈래로 뻗어 나왔다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면서 사라진다. 그때 감정은 시간과 무관하게 격하게 흘러나올 때가 있다. 눈물이 슬픔을 지배하고 고함이 화를 더 내게 한다. 감정은 행동을 부추기고 오히려 생각을 멈추게 한다.
잠깐! 이때 마음의 속도를 0.5배속으로 틀어보자. 그러면 무엇이 보일까. 정말 화를 내고 있는 걸까? 혹시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본질의 마음인데 화를 내는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마음속에 글을 쓰듯 상상해 보자.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아무리 격한 감정도 조금 정리되고 희미해진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다 보면 상황을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 감정에 휩쓸리기 전에 느리게 마음은 어땠을까. 욕구와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한 겹 아래의 감정을 바라보자. 숙제를 잘 못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행동 안에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이 숨겨져 있는 법이다. 늦게 회식하는 남편에게 화가 나지만, 그 안에는 가장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도 함께일 것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그날을 조금 깊이 매일 살펴본다면, 몇 개의 패턴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에서 상대에게 조금 더 내 마음의 본질에 가까운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한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실수를 판단하지 않고 다음의 기회에 진심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실수를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상대의 마음은 내꺼가 아니니. 괜찮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그렇게 해보지 못했지만,
네게는 모든 일은 다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해
(안네 프랑크)
참, 올해는 글쓰기 모임에서 같은 작가님께 연두색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습니다. 여기엔 매일의 독서에서 좋은 글귀를 적어볼까 해요. 작심 3일 한량 타입이라 이 모든 걸 다 할진 조금 걱정되지만 그래도 3일에 한 번 결심만 한다면 뭐든 할 수 있겠지요. JummaPD 작가님,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조금 더 밀도 있게 읽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