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이유, 써야만 하는 이유 (4)
나무는 말하기를, 내 안에는 씨 하나와 불티 하나와 생각 하나가 감춰져 있어요. 나는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삶을 얻고 있어요. 영원의 어머니가 내게 감행한 시도와 계획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지요. 내 모양새와 내부의 결도, 그리고 내 머리 주변에서 속살대는 이파리들의 작은 유희도, 내 껍질의 작디작은 상처까지도 모두 유일한 것이에요. 나의 과제는 내가 받은 일회적인 것들로부터 영원한 것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지요.
나무는 말하기를, 나의 힘은 믿음이에요. 나는 내 아버지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매년 나로부터 생겨나는 즈믄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지요. 나는 내 씨앗에 감춰진 비밀스런 이야기를 끝까지 살아갈 뿐, 다른 것은 염려하지 않아요. 나는 신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어요, 그리고 내 삶의 과제가 성스럽다는 것을 믿지요. 나는 이런 믿음 갖고 살아가요.
우리가 슬프고 더 이상 삶을 견뎌내기 힘들 때 나무는 우리를 타이를 것이다. 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를 봐! 산다는 것은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아. 그런 것은 어린애들 생각일 뿐이지. 네 안의 신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생각들은 사라져 버릴 거야. 너는 겁을 먹고 있는데, 왜냐하면 네가 가고 있는 길이 너를 네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멀리 이끌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이 그리고 하루하루가 너를 다시 어머니에게로 이르게 하는 것을! 고향은 여기나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야. 고향은 바로 네 안에 있지. 다른 어디에도 없어.
<나무들> p.10-11, 민음사. 2000
고백할게요.
처음부터 당신을 좋아했어요. <데미안>을 읽었을 때부터. 중학교 때였는데 그땐 잘 몰랐어요. 고등학교 때 한번 더 읽고, 스무 살 시절 한 번 더 읽었지요. 그리고 열아홉 살 고등학교 3학년 때 이 책을 만났어요. [나무들]. 몇 번의 이사 끝에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는지 책을 결국 찾지 못해서 10년 전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같은 책을 찾아냈어요. 그리고 제본을 했어요.
최근 다시 서점에 가니 당신의 책이 참 많더라고요. 수집가라서 죄다 모으고 싶었지만 조금 참았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만나고 싶었나 봐요. 소녀는 아가씨가 되고, 애엄마가 되었죠. 그럼에도 이 구절은 10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아요. 작은 불씨처럼 마음에 남아있어요. 이 구절 덕분에 살아왔고, 살아냈어요. 그래요, 저 단락이 지금의 저를 살아 있게 한 작은 불씨랍니다. 글에 대한 마음을 내내 간직해 왔어요. 아, 오늘부터 다시 당신의 책을 다시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마흔이 넘은 지금, 그 시절의 불씨는 지금 어떤 씨앗이 되었는지 궁금하거든요. 열아홉 그 시절 당신의 삶이, 자연에 대한 시선이 마음을 움직였어요. 당신이 정원가이자 작가이자 화가인 거마저 다 좋았어요. 그래서 그런 삶을 꿈꾸었어요. 낙관의 시선이 좋았거든요. 당신을 알게 된 이후로 바람도 나무도 풀도, 그를 만나는 모든 순간이 모두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또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부끄럽지만, 지금 마흔 둘의 저는 정원을 가꿔요. 글도 조금 쓴답니다. 그림도 끄적거려요. 제 삶도 당신과 조금 닮았을까요? 이 여정의 기록도 정말 의미가 있을까요? 아직은 저는 저를 마주하는 것에도 서툴러요. 애써볼게요. 사실 글쓰는 삶도 정원을 가꾸는 삶도 때때로 쉽지 않았어요. 자폐를 가진 아이를 키우느라 너무 힘들땐 정말 다 포기하고 싶어져요. 대화 없는 삶에서 글조차 쓸 수 없을땐 정말 너무 외로워요. 글을 쓰고 싶어도 허락되지 않는 시간들에 괴로워요. 슬프거든요. 그래요. 오늘 같은 날, 생의 의지가 조금 옅어짐을 자각할 때, 내 안의 불씨를 발견했어요. 불씨는 당신의 글이었어요. 고마워요, 기억났어요. 내내 마음속에 작은 불씨를 피워주어서. 그냥 그 감사함을 오늘 쓰고 싶었어요. 힘든 하루였거든요.
힘들 때, 또 편지 쓸게요.
제 안의 작은 불씨를 기억하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알고 싶어요. 당신은 어떻게 그 불씨를 이처럼 아름다운 꽃과 같은 글로 피워냈는지. 나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글이 나의 불씨가 되었듯, 나의 글도 누군가를 작게나마 위로할 수 있을까요?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헤르멘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서점에서 이 구절을 보면서 잠깐 웃었다. 기쁨은 살짝 뒤로 미루는 기쁨도 있다는 걸, 나의 롤모델도 이미 알고 있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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