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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Jan 10. 2024

김장 한 포기

고봉밥에 김치 한쪽 얹어 먹는 밥 한 숟가락

시시때때로 식욕이 넘치는 요즘이다.

남들은 감기 걸리면 입맛이 없다는데 난 감기가 와도 왜 이리 입맛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산티아고를 다녀와 제일 먼저 한 일은 길고 긴 겨울 식탁을 책임질 김장이었다. 겨울 채비 중에서도 내게는 제일 큰 숙제였다. 시원하면서도 간이 딱 맞는 김치 하나면 열 반찬 부럽지 않은 밥상을 뚝딱 차려낼 수 있으니,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막중하다.

 날짜보다 하루 일찍 도착해 버린 절임 배추도 식겁했는데, 나의 김장 파트너인 아들은 때마침 감기가 옴팡 들어버렸다. 결국 올해 김장은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절임 배추를 꺼내어 채반에 물기가 빠지도록 켜켜이 쌓아놓고, 찹쌀 풀을 쑤고, 황태, 다시마, 무, 파뿌리까지 넣어 육수를 제일 큰 냄비에 한 솥 끓여놓았다. 쪽파와 홍갓은 깨끗이 씻어 검지 한마디만큼 잘라두고, 깐 마늘과 생강도 편하게 도깨비방망이로 갈아놓고, 무 10개 채를 치고, 자투리는 숭덩숭덩 썰어두었다.

혼자 하다 보니 사진도 달랑 이거 한 장입니다

 어지간한 밑 작업은 끝났다. 일 년에 한 번 세상 구경하는 제일 큰 양은 대야를 꺼내 찹쌀 풀과 식힌 육수를 옮겨 담고는 시댁 상주에서 보내온 빛깔 고운 고춧가루를 적당히 풀어주었다. 자연스러운 단맛을 더해줄 천연 조미료는 항아리에서 잘 발효된 새콤달콤한 매실청 한 컵과 한 손에 다 쥐기도 버거운 배를 깨끗하게 씻어 껍질째 믹서기에 곱게 갈아 넣었다. 새우젓 한 통, 멸치액젓은 새우젓의 반 정도만 부어주고, 준비된 마늘과 생강, 채를 쳐둔 무까지 넣어 버무리고, 마지막 쪽파와 홍갓을 넣어 물기 빠진 절임 배추에 양념을 치대면 마무리가 된다. 글로 쓰니 다듬고 씻고 준비하는 과정이 짧아 보이지만, 하루 나절이 다 가고 밤 12시가 돼서야 마무리된 30 포기 분량의 김장 과정이다. 긴 시간 종종거리며 만든 가족을 향한 나의 고된 사랑이다.


 내가 직접 담은 김장이라 쑥스럽지만, 간이 딱 맞고 맛도 더할 나위 없다. 베란다에 둔 김장 한 통이 맛깔나게 익었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김칫국물이 침 한번 꼴깍 삼켜지는 향기를 품었다. 삼백의 고장 상주에서 농사지은 햅쌀로 갓 지은 쌀밥은 냄새만 맡아도 구수하니 식욕을 부추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밥을 고봉으로 눌러 담았다. 김치 한쪽 얹어 먹는 밥 한 숟가락,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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